차령산맥 남동쪽에 위치한 충남 공주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찬란한 백제문화 역사의 도시다. 금강 주변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적이 압권이다. 하지만 늦가을 공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빠른 속도로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늦가을 정취를 찾아 공주로 떠나보자.
한적한 시골인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에 숲속의 잠자는 공주처럼 숨어 있는 풍경이 있다. ‘불장골 저수지’(송곡 소류지)다. 1975년 이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인근 하천의 물을 막아 보(洑)의 형태로 축조된 농업관개용 수리 시설이다. 돌을 쌓아 만든 보라 하여 석보(石洑)라고도 한다. 지역 주민은 돌보 또는 독보라고도 부른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큰 풍경을 선사한다.
송곡리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엔학고레’의 이정표를 따라가면 마을을 지나 오솔길로 들어선다. 10여분 올라가면 저수지 제방이 눈에 들어온다. 제방 아래 주차하고 둑 위에 올라서면 저수지와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가을 풍경은 매혹적이다. 멋진 저수지의 물 반영과 새벽안개, 그리고 이른 아침 저수지에 비치는 빛 내림이 눈을 호강시킨다. 어둠이 여명에 자리를 내주면 잔잔한 수면 위로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안개가 핀다. 안개는 수시로 일렁이며 물 위를 몰려다니면서 춤을 춘다. 그 너머로 저수지 정면에 원뿔처럼 우뚝한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가 계절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전남 화순의 세량지에 못지않은 황홀경이다. 바로 옆 빨간 단풍나무와 황금빛 나뭇잎을 떨구는 은행나무, 주렁주렁 달린 감들도 가을 풍경을 더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왼쪽 산 능선 위에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저수지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로키산맥 일대에서 볼 법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울긋불긋 가을옷을 입은 먼 산도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다. 신비로운 경치 속으로 마음이 풍덩 빠지는 듯하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지만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리면 이국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순백의 느낌이 눈에 고스란히 담긴다. 봄이 오면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봄꽃이 저수지 주변을 채운다.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반포면 상신리가 있다. 계룡산 한 자락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린 돌담길이 고즈넉한 마을풍경과 어울려 운치를 더한다. 그래서 ‘돌담풍경마을’로 불린다. 장승, 솟대, 선돌 등 전통문화가 곳곳에 살아 있어 전통촌락이 가지고 있는 멋과 풍류가 느껴진다. 마을에 들어서면 구불구불 야트막한 돌담길이 정겹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머니가 두 팔 벌려 반길 것 같이 포근하다.
마을에 상신계곡이 있다. 계룡산의 명소 중 용산구곡(龍山九曲)을 품고 있다. 신선들이 살 만한 아홉 곳의 비경을 꼽아 이름을 달고 시를 지어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계곡 바위 위에 글씨가 보인다. 이 글씨들은 구한말의 학자 취음 권중면 선생이 직접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권중면 선생은 경술국치 후 관직을 버리고 1916년 상신리로 들어와 서당을 차리고 초야에 묻혀 제자를 길렀다. 계곡 곳곳에 심룡문, 은룡담, 와룡강 등 ‘용’을 품은 이름들을 붙이고, ‘용과 함께 신이 숨쉬는 곳’이라 칭했다 한다.
마을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계룡산도자예술촌이다. 젊은 도예인들이 철화분청(鐵畵粉靑)의 전승복원을 목적으로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자문화 창출지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뜻과 힘을 모아 1993년 형성한 공동체 마을이다. 철화분청은 백토분청의 표면에 철사(鐵砂)로 초화문(草花紋), 조어문(鳥魚紋) 등을 장식한 분청자기다. 소형 술병과 접시, 사발 종류가 많다. 전남 강진의 청자, 경기도 이천의 백자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도자기로 꼽힌다.
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종합전시실을 찾으면 된다. 개별 작가들의 공방을 겸한 전시실에 들어가 작품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작은 마을을 천천히 걷고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면 가을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여행메모
뛰어난 풍광 속 흑돼지 숯불 구이 ‘별미’
자연산 장어구이·민물매운탕… 청벽가든
반포면은 행정구역으로는 공주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대전에 가깝다. 대부분 내비게이션에 ‘불장골 저수지’를 치면 안내해준다. 상신리 돌담풍경마을은 동학사 입구 박정자삼거리에서 공주 방면으로 조금 가다 보면 왼쪽으로 상신리와 하신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상신리는 상신계곡을 따라 계룡산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공주시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불장골 저수지 바로 옆에 위치한 음식점 ‘엔학고레’는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매일 제주에서 직접 직배송 받는 흑돼지와 최상 품질의 비장탄 숯을 사용한다. 뛰어난 자연 풍경 속에서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인 만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토요일은 휴무다.
엔학고레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로,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삼손이 블레셋인 1000명을 나귀의 턱뼈로 죽인 후 목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이 응답돼 생겨난 우물을 기념한 곳이다. ‘레히’ 지방에 있었다고 한다. 구약성서 ‘사사기’ 15장에 나온다.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동학사 지구에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로 이어지는 도중에는 계룡산온천, 계룡산자연사박물관, 동학사오토캠핑장 등이 있다.
반포면 마암리에 있는 청벽가든은 장어구이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하다. 금강에서 잡아올린 자연산 장어를 쓴다. 청벽가든에서 국사봉 등산로를 따라 30여분 오르면 발아래 청벽대교와 금강의 물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