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하며 연일 한국 정부를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모두 걸려 있는 외교·안보 현안을 놓고 한국 정부에만 지나친 압박을 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측은 14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린 제44차 한·미 군사위원회의(MCM)를 계기로 한·일 지소미아 유지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가 회의 후 발표한 공동 보도자료에는 “한·미 합참의장은 지역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다국적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국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국적 파트너십’이라는 이례적인 표현에 한·일 지소미아를 파기하지 말라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합참의장은 공식 회의 전 일대일 면담에서 지소미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회의 후 ‘지소미아를 논의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조금 (논의)했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철회되지 않는 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고 한국을 압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에 유리한 국면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이날 회의에서 미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관련 요구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측은 박한기 합참의장과 이성용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회의 대표로 나섰다. 미국 측에선 밀리 의장과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이 참석했다. 군 관계자는 “방위비 분담 문제가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른 동맹국들과의 방위비 협상에 앞서 한국을 압박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한국을 대폭 증액의 첫 사례로 만들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밀리 의장은 방한 전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한국과 일본은 아주 부자 나라인데 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느냐는 것이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에 노골적인 증액을 요구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바 없다.
군 소식통은 “미군의 주둔 규모가 한국 2만8500여명, 일본 3만9900여명으로 일본이 더 많다는 점, 한·일 양국의 서로 다른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은 이미 일본보다 높은 수준으로 미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2021년에 미·일 특별협정이 종료되는 일본에 대한 증액 압박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밀리 의장은 1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행 비행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에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아주 큰 증액”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밀리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동맹의 밤’ 행사에서 ‘호혜적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최근 몇 가지 (안보) 현안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