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인도 등에서 중국 업체와 경쟁을 위해 제조자개발생산(ODM)을 확대한다. 화웨이, 샤오미 등을 따돌리기 위해 중국 ODM 업체와 손을 잡는 것으로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제어함) 전략이다. ODM은 제조업체가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고 원청업체의 브랜드만 붙여서 파는 방식이다. 개발·설계 등을 원청업체가 하고 제조만 하는 주문자생산방식(OEM)과는 차이가 있다.
1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업계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내년에 생산하는 스마트폰 전체 물량 중 최대 20%가량을 ODM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한 해 스마트폰 전체 출하량이 3억대 안팎임을 고려하면 최대 6000만대까지 ODM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ODM 비중은 2018년 3%에서 올해 8% 수준으로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중국 ODM 업체 윙텍과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7월에는 다른 ODM 업체 화친과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인도 휴대전화 생산업체 딕슨과도 ODM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중국 내 점유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지자 중국에 있는 스마트폰 공장을 모두 폐쇄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신 ODM 업체 확대를 통해 라인업을 재정비해 새로운 경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갤럭시 폴드, 노트10 등 프리미엄 제품은 차별화된 기능과 품질로 대결하고, 중저가 제품은 철저히 가격 중심으로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윙텍이 ODM으로 만든 갤럭시 A6s의 중국 가격은 1299위안(약 21만원)이다.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인도 시장에서도 ODM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비용 절감을 통해 스마트폰 반전을 노리는 LG전자도 ODM 확대가 필요하다. LG전자의 ODM 비중은 2018년 30%, 올해 50% 선으로 내년에는 전체 스마트폰의 절반 이상을 ODM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ODM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 세계 IT업체 중 제품 품질이 가장 좋은 업체로 손꼽힌다. ODM 업체들은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제품인데 품질이 미치지 못하면 단기적인 판매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내 부품 업체들에도 악재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직접 스마트폰을 만들면 국내 협력업체들이 부품을 납품하지만, ODM은 중국 업체가 알아서 부품을 조달하는 구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100~250달러 사이의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ODM 업체들은 화웨이 등 중국 업체보다 10~15%가량 저렴하게 모든 부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만큼 국내 협력업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ODM 확대를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도 국내 협력업체와의 상생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ODM 물량 확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협력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