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 환자 50% 염증 동반, 인공눈물만 넣으면 대부분 실패
MMP-9 수치 측정 통해 확인해야
차가운 바람이 매서운 요즘, 낙엽이 마르듯 우리의 눈도 건조증으로 괴롭다. 47세 남성 A씨는 30대 초반부터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다. 눈에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뻑뻑하고 이유 없이 자주 충혈됐다. 그럴 때마다 인공눈물을 사서 넣으며 10년 넘게 견뎌왔다. 최근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 눈 뜨기가 힘들 정도로 따갑고 인공눈물을 넣으면 오히려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A씨는 얼마 전 병원에서 안구건조증이 오래 자신을 괴롭힌 이유가 ‘염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정확도 높은 최신 눈물 염증 진단기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염증 치료를 하자 증상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
안구건조증(건성안)은 정상적 노화 과정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컴퓨터 사용, 콘택트렌즈 착용, 백내장·라식 수술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돼 환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근래 환경 이슈로 등장한 미세먼지 노출이나 자극성 있는 눈화장품 사용, 아이라인 문신 등도 안구건조증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안구건조증 진료 환자는 25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2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안구건조증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눈물은 안구를 적셔 눈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 눈동자 위를 덮고 있는 눈물막은 수성층, 점액층(뮤신층), 지방층으로 구성돼 있다.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눈물량 자체가 적거나 마이봄샘(위·아래 눈꺼풀 안쪽에 분포)이란 곳이 막혀 지방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수성층이 빨리 말라버려 안구건조증이 발생한다.
동양인의 경우 40~60%는 마이봄샘 기능 저하, 20~30%는 수성층 문제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증상은 눈시림, 따가움, 이물감, 충혈, 시력의 흐려짐, 빛에 민감해짐 등이다.
요즘처럼 추워진 날씨로 난방기를 가동해 실내가 건조해지면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진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차흥원 교수는 25일 “겨울철에 증상이 더 심해지는 안구건조증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으로 진행될 수 있고 각막(검은자위)에 미세한 상처가 반복되거나 각막이 점점 뿌옇게 흐려지면서 심각한 궤양이 생기면 시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관리와 예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염증 동반 여부의 정확한 진단 없이 동네 안과 등에서 단순히 인공눈물만 처방받아 쓰고 있는 환자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2014년 안과 분야 국제학술지 ‘각막(Corne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안구건조증 호소 환자의 약 50%는 심각한 염증을 동반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안구건조증은 염증 유무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 염증성 안구건조증일 경우 면역억제제, 소염제, 항생제 처방으로 항염증 치료를 먼저 적극 시행해야 한다. 비염증성일 경우에는 인공눈물이나 누점폐쇄(눈물이 흐르는 누점을 막아 눈물이 머물게 해 줌), 눈 영양제(오메가3) 처방 등 균형이 깨진 눈물막을 보충해 주는 방향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차흥원 교수는 “대학병원까지 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인공눈물을 계속 써 왔지만 해결되지 않은 이들로, 염증을 동반한 경우가 60~70%. 의료기관에 따라선 90% 이상 된다는 보고도 있다”면서 “이 경우 염증을 없애는 치료부터 하고 인공눈물을 투여해야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안과협회 연구에 따르면 인공눈물만 100% 처방받은 환자의 약 50%는 치료에 실패했다. 또 2007년 국제건성안워크숍 보고서에 의하면 대부분의 안구건조증 치료와 처방이 객관적 진단에 의거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환자 증상에 의해 이뤄진다. 그간에는 염증 동반 여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어려웠기 때문에 염증성 안구건조증 환자에게 인공눈물만 처방하거나 반대로 비염증성 환자에게 항염증 치료제를 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안구건조증 진단법은 눈물 생성량 검사, 눈물층 안전성 검사, 각막 상피세포 상태 파악을 위한 염색술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검사가 다분히 주관적이며 민감도(진양성률)와 특이도(진음성률)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계가 있다. 특히 염증성 안구건조증 여부를 확인하려면 대학병원급에서 생화학분석이 필요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삼성서울병원 안과 정태영 교수는 “기존의 어떠한 진단법도 안구건조증의 염증을 확인할 수 없으며 오직 생체 염증 표지자인 ‘MMP-9’ 측정을 통해서만 염증성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MMP-9는 안구 표면의 상피세포가 자극을 받았을 때 생성되는 단백질 분해 효소로, 눈물 체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염증 바이오마커(표지자)다. 특히 안구 표면 질환과 높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 눈에서는 40ng/㎖ 미만 범위로 존재하고 40ng/㎖ 이상이면 염증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 MMP-9를 측정하는 첨단 진단기기인 ‘인플라마드라이’가 미국에서 개발돼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판매 승인을 받았고 국내 안과병·의원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본인부담 80%(의원급 약 3만2000원선)로 검사받을 수 있다.
아래 눈꺼풀 안쪽에서 소량의 눈물 샘플을 채취해 이 기기에 장착하면 MMP-9 수치를 측정해 10분 안에 염증성 안구건조증인지 확인할 수 있다. 염증이 있으면 임신 테스트기처럼 진단기에 빨간색 선으로 표시되며 농도가 높을수록 색이 더 짙어진다. 일반 안구건조증 검사에 비해 민감도(85%)와 특이도(94%)가 높다. 이 검사를 기존의 진단법과 병행하면 염증 검사의 정확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MMP-9의 측정은 백내장이나 라식·라섹 등 시력교정 수술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검사이기도 하다. 안구에 염증이 있으면 각막 표면이 불안정해진다. 시력 교정이나 백내장 수술의 경우 정확한 각막 상태 파악이 특히 중요하며 염증이 있으면 수술이 부정확하고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길 우려가 높다.
정 교수는 “실제 백내장 수술 전 환자 68명을 분석한 결과 별다른 증상이 없는 환자 중에서도 30~50%는 눈물에서 MMP-9가 검출돼 안구 표면 질환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백내장굴절수술학회는 올해 5월 안구건조증과 안구 표면질환을 방치한 채 수술할 경우 질환 악화, 시력저하, 수술 후 합병증 등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MMP-9를 측정할 것을 권고했다. 차 교수는 “염증성 안구건조증으로 처방받은 후 일정 간격으로 MMP-9 측정 검사를 해 보면 표시되는 색깔 농도를 통해 치료 호전 정도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고, 언제 염증 조절 약을 끊을 수 있을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