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의 18번째 대선 경선 후보가 됐다. 후보 난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제압할 ‘필승 카드’를 아직 찾지 못한 민주당의 단면이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이날 선거운동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를 물리치고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며 “우리는 트럼프의 무모하고 비윤리적 행동을 4년 더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그가 입장을 번복한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의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 경선 구도는 요동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블룸버그 앞에는 까다로운 숙제가 수두룩하다. 그는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경제·안보 정책은 보수, 총기규제·낙태 등에선 진보 입장에 서 있다. 블룸버그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급진적인 정책에 우려를 갖고 있는 민주당 내 중도 표심을 노리고 있다. 그의 가세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 중인 피트 부티지지 사우스벤드 시장 등 민주당 내 온건파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산은 양날의 칼이다. 블룸버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전문 통신사 블룸버그통신을 소유한 미디어 재벌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올해 그의 재산을 555억 달러(65조3000억원)로 추산했다. 세계 9위, 미국 6위 부자다. 이를 말해주듯 블룸버그 캠프의 대변인은 “앞으로 2주 동안 TV광고에 3100만 달러(364억4000만원)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그를 부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면서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경선 후보인 샌더스 상원의원은 “선거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블룸버그의 아이디어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고령도 부담이다. 블룸버그는 77세로, 대선 출사표를 던진 사람 중에서 샌더스 의원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이번 출마자 중에서 고령 후보들이 유독 많은 건 그나마 위안이다. 민주당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76세고, 워런 상원의원이 70세다. 공화당 후보를 사실상 예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73세다.
잦은 당적 변경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2001년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으로 옮겼다. 뉴욕시장 3선에 도전했던 2009년 선거에서는 무소속을 선택했다. 이후 당적이 없다가 지난해 10월 민주당을 다시 찾았다.
늦은 출마 선언 탓에 블룸버그는 내년 2월 4개 주에서 실시되는 경선 초반전을 뛰어넘기로 했다. 14개 주에서 경선이 동시에 열리는 ‘슈퍼 화요일’(내년 3월 3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7일 뉴욕시장 재직 당시 펼쳤던 ‘신체 불심검문 강화’ 정책에 대해 사과했다. 이 정책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겨냥한 과잉 검문이란 지적이 제기됐었다. 인종차별 논란도 블룸버그가 넘어야 할 산인 셈이다.
그의 파괴력에 대해선 예측이 엇갈린다. 뉴욕타임스는 “블룸버그의 출마로 민주당 내 경선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로이터통신은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트럼프 진영은 그의 출마를 평가절하했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민주당 후보 중 누구도 트럼프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