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가 완성되기까지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특히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인 이현민(38)씨는 주인공 안나 캐릭터의 전반적인 작업을 총괄했다.
크리스 벅, 제니퍼 리 감독과 함께 내한한 이 슈퍼바이저를 26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2편은 단순히 안나와 엘사의 새로운 모험을 그리기보다 자신의 뿌리와 내면 깊은 곳을 탐색하는 이야기여서 좋았다. 뜻깊은 속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안나는 여전히 밝고 씩씩해요. 다만 1편에서 엘사와 떨어진 이후 혼자 외롭게 지내면서도 굳세게 견뎠다면 2편에서는 가족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 조심성이 많아졌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을 때 자기 자신을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는 걸 각성하게 됩니다.”
이 슈퍼바이저는 1편에도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엘사가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르는 장면 등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다. 2편 제작이 시작되고 2017년 말쯤, 안나 캐릭터의 새로운 슈퍼바이저로 임명됐다. “전 슈퍼바이저가 총괄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제가 바통을 이어받았어요. 영광이었죠. 디즈니는 워낙 가족처럼 챙겨주고 끌어주는 문화가 강해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 슈퍼바이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유년기에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홍콩과 말레이시아에서 몇 년간 거주하기도 했는데, 어릴 적부터 유난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적성과 재능을 살려 미국 코네티컷주 웨슬리안 대학교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했고, 이후 미국 명문 예술학교인 칼아츠를 졸업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몸담게 된 건 2007년 재능 계발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였다. 2009년 ‘공주와 개구리’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악어 루이스 캐릭터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곰돌이 푸’ ‘주먹왕 랄프’ ‘빅 히어로’ ‘주토피아’ ‘모아나’ 등의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삼남매 중 막내인 이 슈퍼바이저는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가족, 특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지지를 언급했다. “어머니가 아낌없이 지원해주셨어요. 제가 만화책을 사 모으는 것도 기꺼이 허락해주셨고요(웃음).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위암 판정을 받아 유학을 포기하려 했었는데, 어머니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고 독려해주셨죠.”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안나의 감정에도 더 깊이 이입됐다. 특히 후반부 안나가 아렌델 왕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동굴 벽을 기어오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누구나 살면서 홀로 극복해야 하는 고비들이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자기 내면의 힘을 믿고 나아가는 안나를 통해 많은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