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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개입탓 홍콩선거 참패”… 美에 분풀이 나선 中

한 남성이 26일 점심시간을 맞아 사람들로 붐비는 홍콩 카오룽반도 거리에서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양손에 들고 서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 관계자들이 홍콩증시 상장 기념식에서 대형 징을 치고 있는 모습. 26일 홍콩증시에 재입성한 알리바바 주가는 ‘선거 특수’에 힘입어 공모가보다 6.5% 급등했다. AP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친중파가 궤멸하자 사태 책임을 미국에 돌리며 분풀이를 하고 나섰다.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을 문제삼아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관영 매체들도 미국 때리기를 이어갔다. 홍콩에서는 선거 참패의 ‘진앙’으로 지목된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26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은 전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미 의회의 홍콩인권법안 통과에 강력히 항의하며 홍콩 문제 및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 부부장은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홍콩 문제는 중국 내정”이라며 “미국 측이 잘못을 시정하고 관련 법안을 중지하며, 홍콩 문제 및 중국 내정간섭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도 지난 20일 홍콩인권법안과 관련해 임시 대사 대리인 윌리엄 클라인 주중 미국대사관 공사 참사관을 초치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홍콩 선거에 대해 폭력 분자와 외부 세력이 선거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는 논평에서 “폭력 분자와 외부 세력이 폭력 수위를 높이고, 홍콩 사회에 대립을 조장하고 선거 과정을 엄중히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다른 논평에서 “홍콩인권법안은 폭력을 조장하고 중국 내정을 함부로 간섭하는 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에서는 람 장관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구의회 선거에서 91명의 당선자를 낸 민주당의 우치와이 대표는 “사임, 내각 개편, 독립적인 조사위 발족 등 람 장관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며 사실상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우 대표는 정부가 계속 시위대 요구를 외면하면 다시 대립이 격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친중파 진영에서도 람 장관과 거리두기를 하는 분위기다. 친중파인 신민당의 레지나 입 대표는 더 이상 정부 편을 드는 ‘고무도장’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신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후보 28명이 모두 낙선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거대한 패배를 떠안은 친중파 진영이 베이징에 람 장관 축출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캐리 람 장관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위대가 말하는 5대 요구 수용에 대한 재고는 없다”고 일축하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여전히 람 장관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번 선거 압승으로 범민주 진영은 홍콩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 중 40% 가까이를 확보하게 됐다. 2016년 말 선출됐던 선거인단 중 범민주 진영 인사는 325명에 불과했으나 이번 승리로 구의원 몫의 117명을 추가 확보하면서 선거인단 중 범민주 진영 인사는 37%인 총 442명에 달한다. 현재의 반정부 분위기를 감안하면 2021년 선거인단 선출에서 과반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인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계 일부가 기존 친중국 성향에서 범민주로 돌아선다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홍콩 매체들은 “범민주 진영이 조왕(造王·킹메이커)이 됐다”고 보도했다. 동방일보는 “범민주 진영이 재계와 협력한다면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할 수도 있다”며 “중국 중앙정부에 중대한 경고 신호”라고 전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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