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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아스피린 복용 ‘알고 먹어야 약’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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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용량 먹으면 뇌졸중 등 발생 감소
피 뭉치게 하는 혈소판 작용 억제
심뇌혈관질환 재발 막는데 쓰여
출혈 부작용 위험 있어 맹신 금물
의사와 상담… 득실 따진 후 먹어야
건강한 성인은 복용 안 해도 돼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은 전세계 사망 원인 1위로, 10년 뒤 2030년에는 매년 2300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발표된 지난해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암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뇌혈관질환은 3위로 급상승한 폐렴에 이어 4위로 한 계단 내려갔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꾸준한 운동과 평생 지켜온 좋은 식습관 덕분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챙겨먹는 약 없이 건강했던 A씨(72)는 얼마 전 한 밤중에 쥐어짜는 듯한 가슴통증을 느껴 황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A씨가 받은 진단은 협심증. 핏덩어리인 혈전이 생겨 심장혈관이 좁아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초기에 해당돼 몇일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의료진 권고에 따라 재발 방지를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매일 한 알씩 먹고 있다.

A씨처럼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피를 묽게 해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낮춰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중·장년층 이상이다. 그런데 아스피린에 대한 엇갈리는 연구결과가 종종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복용자들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나상훈 교수는 9일 “초진 환자든, 오래된 단골이든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아스피린에 관한 것”이라며 “복용 효과가 없다거나 부작용 관련 보도가 있을 때는 아스피린을 계속 먹어도 될지 묻는 환자들이 많아지고, 심뇌혈관질환 예방에 긍정적인 보도가 나오면 거꾸로 아스피린을 먹지 않던 사람들도 ‘아스피린 좀 처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그래도 의사한테 묻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급성 심장병으로 심장혈관에 스텐트(금속 그물망)를 끼워넣은 한 환자의 경우 복용해 오던 아스피린을 수 주간 자기 마음대로 끊고서 외래 진료를 받으러 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스피린은 1897년 최초로 합성된 해열·소염 진통제이자 혈전(피떡) 예방약이다. 500㎎ 고용량 제품은 감기로 인한 발열, 근육통, 관절염 등 치료에 사용된다. 혈전으로 인한 심뇌혈관질환 예방 목적일 경우 ‘100㎎이하 저용량’ 제품이 쓰인다. 시중에는 ‘아스피린 프로텍트’라는 오리지널약과 복제약 여러 개가 나와 있다.

경희대병원 심장혈관센터 김원 교수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급격히 감소시킨다는 1998년 대규모 연구결과로 인해 지금까지 심뇌혈관질환의 1, 2차 예방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심뇌혈관질환이 없는 사람 대상 아스피린 예방효과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스피린은 혈액 성분 중 피를 뭉치게 하는 역할의 혈소판 작용을 억제한다. 피가 응집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따른다. 아스피린 복용자에게 관찰되는 대표적 부작용은 손 발에 멍이 쉽게 들고 위점막 출혈로 인한 속쓰림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치아를 빼거나 내시경 시술 시에는 출혈 우려로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하기도 한다.

실제 2016년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아스피린 복용은 심근경색 22%, 그로 인한 사망률을 6% 줄이는 반면 주요 위장관출혈 59%, 뇌출혈을 33%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뇌혈관질환 감소와 함께 출혈 부작용 위험도 따르는 만큼 아스피린에 대한 무조건적 맹신은 삼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심뇌혈관질환을 이미 겪은 이들이 재발을 막기위한 ‘2차 예방 목적’의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뇌혈관질환 이후 아스피린을 사용하면 1년간 재발률을 30~50%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이 때 속이 쓰리거나 위궤양이 생기면 위장약을 먹더라도 다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표준치료다. 경우에 따라 아스피린과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항혈소판약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뇌혈관질환이 없는데도 일상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수 있는데, 이를 ‘1차 예방 요법’이라 한다. 1차 예방은 심뇌혈관질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으로 2차 예방보다 더 좋은 아스피린 사용법이다. 하지만 최소 5~10년 이상 꾸준히 사용하는 경우에만 효과가 일부 있으며 이 마저도 장기사용 시 출혈과 위장관계 부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럴 땐 담당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반드시 득실을 따져 본 뒤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고지혈증, 비만, 가족력 등을 갖고 있다면 향후 심뇌혈관질환 발생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복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미국심장협회(AHA)와 미국뇌졸중협회(ASA)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표 수치들과 흡연 등 생활습관 등을 대입해 10년 내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직접 계산해 볼 수도 있다. 표준 진료지침은 심뇌혈관질환 10년 내 발생 위험률이 10% 넘는 환자의 경우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을 권고 있다.

아스피린 복용이 권고되는 경우 꾸준히 먹는 게 중요하다. 미국심장병학회 연구에 따르면 아스피린을 먹다 끊으면 계속 복용하던 사람 보다 3년 안에 심장발작 또는 뇌졸중을 겪을 확률이 37% 높게 나왔다. 이른바 ‘리바운드 효과’다. 꾸준한 복용을 위해선 약을 항상 보이는 곳에 두고 주변 가족에게 복용 사실을 알려 도움받는 것이 좋다.

아스피린 사용 관련 논란이 계속되자 미국심장병학회는 지난 3월 개정된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학회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고 장기 사용시 출혈 위험이 높지 않은 40~70세에서만 ‘1차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40세 미만과 70세 이상인 경우 1차 예방 목적의 아스피린 복용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원 교수는 “심뇌혈관질환을 앓았거나 위험인자를 가진 이들에게 아스피린은 예방적 효과가 클 수 있지만 건강한 성인에게는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아스피린 복용과 중단의 판단은 자신이 먹고있는 게 1차 예방용인지, 2차 예방용인지 그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할 수 있다”면서 “적어도 마지막 받은 처방전은 휴대전화 사진으로 저장해 항상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만병통치약?… 아스피린, 모든 원인 사망 위험 19% 낮춰

100㎎ 이하 저용량 아스피린이 암 또는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 감소와 연관있다는 해외 연구결과가 나왔다. 비슷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몇차례 발표됐다. 아스피린이 심뇌혈관질환을 넘어 질병 예방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9일 헬스데이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65세 이상 남녀 14만6152명을 대상으로 평균 12.5년(8.7~16.4년)간 진행된 조사분석 자료를 최근 발표했다.

분석결과 저용량 아스피린을 1주일에 3번 이상 복용하는 사람은 전혀 먹지 않은 사람보다 암 사망 위험이 15%,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은 19% 낮게 나왔다. 특히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25~29.9로 과체중인 사람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매주 3번 이상 먹는 경우 위암 사망 위험이 28%, 대장암 사망 위험은 34% 낮았다. 연구팀은 “아스피린의 염증 억제 효과 때문으로 보이는데, 위암 대장암 등 소화기암은 염증과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는 출혈 위험이 높지않은 50~59세 남녀는 대장암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을 권장한다. 미국 임상종양학회는 아스피린 복용 여부는 의사와 상의 아래 개인의 건강상태와 출혈 위험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을 권하고 있다.

국내에선 이화여대목동병원 천은미 교수팀이 2002∼2015년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해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5년 이상 복용한 40~84세 성인의 경우 아스피린 비복용자보다 폐암 위험이 4~11% 낮았다고 올 초 발표했다. 또 지난해 박상민 서울대병원 교수팀은 46만여명의 건강보험 빅데이터(2007~2013년)를 분석해 아스피린 누적 사용 기간이 길수록 위암 발병률이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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