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이들의 얼굴을 한 번도 안 보고 지나치기 어렵다. 겨울 성수기 대작 두 편을 각각 내놓는 배우 이병헌(49)과 마동석(48) 얘기다. 마동석은 방황하는 청춘들의 성장담 ‘시동’(18일 개봉)과 백두산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 ‘백두산’(19일)을, 이병헌은 ‘백두산’과 근현대사 배경의 ‘남산의 부장들’(1월)을 선보인다. 이른바 ‘이병헌 대 이병헌’ ‘마동석 대 마동석’의 대결이 펼쳐지는 셈이다.
주연급 배우가 동시기에 작품 두 편을 개봉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전례를 들자면 2017년 겨울 ‘신과함께-죄와 벌’과 ‘1987’을 동시에 개봉했던 하정우 정도가 떠오른다. 성수기 대작 ‘겹치기’ 개봉은 현 한국영화계에서 이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한다.
촬영 당시엔 개봉 시점을 예상하지 못했을 배우 본인으로선 다소 난감한 일이다. 특히 개봉작 두 편이 하루 차를 두고 맞붙게 된 마동석의 경우는 양쪽 모두에 멋쩍은 상황이 돼버렸다. 장르나 캐릭터 색깔이 완전히 다른 점은 다행스럽다. ‘시동’에서는 특유의 친근감으로 웃음을 주고 ‘백두산’에서는 유능하고 냉철한 ‘브레인’으로 변신한다.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동’에서 마동석은 어둠의 세계에 몸담았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방 변두리 중국집의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거석이 형을 연기했다. 중국집 배달부로 취직한 가출 청소년 택일(박정민)의 반항기를 제압하고 그에게 인생의 참맛을 알려주는 인물. 귀 뒤로 빗어 넘긴 단발머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거석이 형은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한다. 무쇠 팬도 가볍게 다루는 우람한 체격을 하고도 취향만큼은 소녀스럽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걸그룹 트와이스의 댄스곡 ‘티티(TT)’ ‘낙낙(Knock Knock)’ 안무를 따라 추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상대의 귀싸대기를 올리는 묵직한 한 방은 기존 ‘마동석표’ 액션 영화 속 모습과 겹치지만 코믹함이 덧대어졌다.
‘백두산’에서 맡은 역할은 기존의 이미지와 완전히 차별화된다. 수년 전부터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온 미국 프린스턴대 지질학 교수 강봉래 역을 소화했다. 한반도를 집어삼킬 마지막 폭발을 막기 위해 자신만의 이론을 구축하고 그에 따른 작전을 이끄는데, 엄청난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끝까지 애쓴다. 백두산 화산 폭발 전문가 캐릭터를 위해 마동석은 안경이나 의상 등 외적 변화는 물론, 전문 용어 대사까지 소화해냈다. 특유의 애드리브를 더해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마동석은 “몸보다 머리를 쓰는 캐릭터”라며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들어간 대사가 많아 어려웠지만 촬영 전 숙지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전했다.
이병헌도 ‘백두산’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극 중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맡았는데, 그가 북한 요원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이다. 북한 사투리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 연기는 물론 총기를 활용한 고난도 액션까지 선보였다.
영화는 리준평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한 남측의 비밀작전에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병헌은 “여러 장르를 경험했지만 재난영화는 처음”이라면서 “재난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스릴감과 긴장감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고 소개했다.
남한 폭발물 처리 담당 대위 조인창 역을 맡은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도 기대를 모은다. 이병헌은 “하정우와 함께 버디무비(두 주인공이 콤비로 활약하는 영화) 형식의 훈훈함이 있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고백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묵직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이 벌어지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병헌은 한때 권력의 2인자였으나 암살사건의 주범이 되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연기한다. 극 중 이름은 김규평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적잖은 부담감이 따랐다. 이병헌은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의도가 왜곡되는 걸 최대한 경계했다. 인물들 간의 감정과 관계를 깊이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내부자들’(2015)의 우민호 감독과 재회했다. 우 감독은 “이병헌이 안 하면 작품을 접으려 했을 정도로 ‘이병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현장에서 느낀 긴장감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면 훌륭한 영화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