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중동 내 미국 동맹국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이란과 갈등을 빚어온 중동 국가들은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제거를 내심 반기면서도 보복을 우려해 침묵하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미국이 가셈 솔레아마니 사령관을 제거한 뒤 중동 내 동맹국들의 가장 큰 반응은 침묵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수년간 이란의 적대행위와 무장단체 지원을 비판해 왔지만 이번 사태 이후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이를 두 가지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이란 반격이 미국의 동맹국을 향할 것이라는 걱정과 미국이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동맹을 지킬 것인지 불투명하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은 동맹을 통한 대리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미국의 중동지역 동맹국들은 이란의 보복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미국의 공습과 거리를 두고, 심지어 이란에 손을 내밀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보호주의 경향도 동맹국의 기대를 축소시키고 있다. 바버라 리프 전 UAE 주재 미국대사는 “걸프 국가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이란이 보복할 경우 동맹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어느 정도까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NYT는 이스라엘마저도 “눈에 띄게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솔레이마니는 지난 25년간 유대인 등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속해온 대표적인 적이었다. 실제 이란은 미국의 재보복 시 이스라엘 주요 도시를 표적으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연설에서 미국의 공습을 평가하고 지지한다는 정도만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사관과 미군 기지를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 인근에는 이틀 연속 보복성 로켓포가 떨어졌고,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미군 기지 공격으로 미국인 3명이 사망했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바그다드 그린존 내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로켓포 3발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이뤄진 포격이다. 스카이 아라비아 뉴스는 미국대사관 맞은편 민간인 주택에서 이라크인 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그린존 일대에서는 이날 저녁 내내 공습경보가 울린 것으로 전해졌다.
케냐에서는 미국의 대테러부대가 사용 중인 심바 공군기지가 공격을 받았다. 미 아프리카사령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미군과 케냐군이 공동으로 쓰는 기지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이번 공격으로 미군 1명과 도급업자 2명 등 미국인 3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알샤바브는 지난달 미군 공습으로 조직원들이 숨지자 보복 공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알샤바브는 지난달 28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최소 100명을 사망하게 했고 미군은 이후 세 차례 공습으로 알샤바브 무장대원 4명을 사살한 바 있다. 로이터는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에 또 하나의 공격이 야기됐다”고 전했다. 향후 중동·아프리카 전역에서 미국을 상대로 산발적인 공격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