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옛 악연까지 끌어오며 말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79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을 거론하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988년 미 해군의 이란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맞대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 새로운 핵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이란이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로하니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1988년 피격된 이란항공 여객기의 편명 ‘IR655’에 해시태그를 붙이며 “숫자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290이라는 숫자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은 그러면서 “절대로 이란 국민을 위협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88년 7월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하던 미 해군 소속 이지스함 USS 빈센스호는 이란항공 655편을 이란 공군 전투기로 오인하고 격추했다. 당시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이 숨졌다. 미국은 실수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지만 이란 내 반미 성향 인사들은 아직도 미국이 의도적으로 격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사건은 미국에서는 거의 잊힌 반면 이란에선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복수를 시도할 경우 이란 내 표적 52곳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2’라는 숫자가 1979년 이란혁명 직후 발생한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444일 동안 억류됐던 미국인 52명을 뜻한다고 직접 밝혔다. 이에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항공 격추 사건 희생자 수인 ‘290’을 언급하며 맞받아친 것이다.
말싸움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 핵 문제를 두고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새로운 핵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열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고 답했다. 콘웨이 고문은 “만약 이란이 정상국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물론이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란은 결코 핵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결정을 번복할 경우에만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간 대화가 열릴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