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기자회견에 분통을 터뜨렸다. 모리 마사코(사진) 법무상은 레바논에서 열린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바로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곤 전 회장을 비판했지만 여론전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NHK 등에 따르면 모리 법무상은 9일 0시4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곤 전 회장에 대해 “불법 출국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를 향해 (일본의) 법 제도와 운용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곤 피고는 주장할 것이 있으면 일본 형사사법제도에서 공정한 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리 법무상이 이례적으로 새벽에 기자회견을 연 것은 곤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한 일본의 반박을 신속하게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형사 재판을 앞두고 레바논으로 도주한 곤 전 회장은 8일 오후 3시(현지시간, 일본시간 오후 10시) 베이루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곤 전 회장은 “금전 비리로 나를 기소한 것은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하루에 8시간이나 조사를 받았는데, 변호사도 동석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의 사법제도는 기본적인 인권 원칙에 반한다”고 비난했다.
곤 전 회장을 수사한 도쿄지검 사이토 다카히로 차석검사는 지검 홈페이지에 영어와 일본어로 게시한 논평을 통해 “곤 전 회장의 회견 내용은 자신의 행위를 부당하게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곤 전 회장이 일본에서 재판을 받도록 관계기관과 협력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지검이 곤 전 회장의 도주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지난 5일에 이어 두 번째다. 성명을 일본어와 영어로 게재한 것은 일본 사법제도의 정당성을 국제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모리 법무상이나 도쿄지검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곤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위해 레바논 등 관계국·기관에 협조를 요청키로 했지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레바논에서는 곤 전 회장을 옹호하는 여론이 높은 데다 자국민을 외국에 인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내법도 있다. 일본 경찰청이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에 국제수배를 요청했지만 강제력이 없는 데다 레바논과는 범죄인 인도조약도 맺지 않고 있다. 곤 전 회장이 자발적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재판은 열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