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독자 마음 사로잡은 ‘마음의 소리’… 장르 실험의 왕

14년간 이어지며 만화가 조석을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린 웹툰 ‘마음의 소리’ 캐릭터 컷.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만화가 조석. 연합뉴스
 
조석이 4년 전 선보인 판타지 웹툰 ‘문유’의 단행본 표지.





2006년 9월 8일 ‘마음의 소리’ 1회 ‘진실’ 에피소드는 낯선 민낯이었고,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것도 만화인가, 이게 연재 가능한가, 의문을 갖다가도 묘하게 기억나고, 이상하게 중독적이었다. 잘 그린 그림도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그림도 아닌, 대체 독자를 무시하는 건지, 독자를 편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게 당황하게 하는 새로운 작품이 웹툰이라는 생태계에 등장한 것이었다.

만화의 주인공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아침에 어질러진 편의점 상황에 주인이 묻는다. “아니, 여기 물건들이 왜 이러냐?” “아, 그거요…. 새벽에 소용돌이 의상을 입은 한 남자가, 별 사탕을 든, 오리 사나이를 어부바하고 뛰어나가다가 진열장에 부딪혔는데요, 오른손에 고기를 들고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어떤 반미주의의 천사 아저씨가 뒤쫓아가면서 물건을 밟아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진짜로. 찍고. 진실은 가끔 통하지 않는다.”

10대들은 그 짧은 웹툰에 환호했다. 세대 맞춤형 별난 유머와 그 수준의 과장이 순간순간 독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고, 세대만의 차별화된 세상으로 돌출된 행복은 14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조석은 첫 회부터 그런 재주를 보여준 작가였다.

새 장르와 캐릭터를 직조하는 괴물

“검색창에 조석을 쳐보세요.” ‘마음의 소리’ 652화에 이런 대사가 등장하자 바로 ‘조석’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자신의 팬 카페를 새롭게 단장한 과정을 표현한 694화가 연재되자 실제로 ‘오늘 웹툰 보고 가입했다’라는 가입 인사만 200페이지가 넘었다. ‘마음의 소리’ 1000회 당시 데이터로는 1회당 최대 12만회의 댓글, 누적 댓글 수 1000만회 이상, 누적 조회 수 50억을 기록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독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했다.

조석은 자신의 독특한 그림체와 연출 방식에 대해 스스로 저평가하는 등 대중이 원하는 것 이상의 돌발 행동을 편안하게 저지르는 솔직한 작가다. 네이버웹툰이 공개한 웹툰 작가 연봉 수준에서 매번 최상위를 기록한다고 알려지자, 조석은 “만화가는 돈 못 벌어요, 라고 얘기하기 싫다. 그러니 얼마나 버는지 감추고 싶지는 않다”는 도발적 응전으로 독자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했다.

198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조석은 전북 전주에서 동암고등학교를 나온 후 전주대학교 만화영상학과를 다니다 중퇴했다. 이런 성장 과정과 전경으로 복무한 군대 생활 경험이 ‘마음의 소리’ 연재 초기에 주요 이야기로 등장했다. 군 제대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다가 2006년 시작된 네이버웹툰의 도전만화가 코너에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네이버웹툰 대표인 당시 김준구 PD에게 발탁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14년 동안 단 한 번의 휴재와 지각없이 이제 글로벌 작가로 성장한 조석은 자신의 작품세계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탄탄한 괴물이 돼 있다.

현재 ‘마음의 소리’는 ‘라인웹툰’과 ‘라인망가’를 통해 영어 중국어 대만어 태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로 제공되고 있다. 광고 영상으로 조석의 중국 팬 사인회 장면 등이 촬영되어 현지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네이버웹툰’이 ‘라인웹툰’으로 세계화되면서 시작된 가장 큰 고민은 번역의 문제였다. 실제 웹툰은 의성어와 의태어도 많고 비속어와 은어 등이 등장해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음의 소리’는 다른 웹툰보다도 그러한 번역 리스크가 가장 복합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번역의 의외성이 대중적 인기를 확장하기도 한다. 중국 현지에서 팬 사인회를 하던 조석에게 중국 팬이 큰소리로 질문을 한다. 스토리에 등장하지 않았던 대사와 새로운 표현을 느닷없이 웃으며 질문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중국 팬들이 모두 환호를 했다고 한다. 중국 독자 중 한국 웹툰 마니아들이 자기 생각대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기획하고, 대사를 바꾸어 창작한 버전의 중국판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기도 한다. 어떤 독자들은 정식 번역 작품보다 중국판으로 리메이크된 대사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데, 실제 그러한 대사 리메이크 버전이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번역비를 받기도 한다. 조석의 작품이 그 표현과 연출만으로 해외에서도 새로운 스토리로 순간 변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그 정도의 의외성이 가능한 작품이어야 실제 글로벌한 웹툰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일본 만화의 전설, 데즈카 오사무는 20대 시절 외과 의사 인턴을 하면서 만화잡지에 각기 다른 2개의 작품을 동시 연재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나중 탁구부’ 등 일본 엽기만화의 표현 수위 그 이상을 보여준다는 평가의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면서 조석은 다양한 작품들을 동시 연재하는 실험을 감행한다. ‘조의 영역’ ‘행성인간’ ‘문유’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전혀 다른 성격과 형식의 서사가 과감하게 실험되고 정교하게 그려진다. 상상력의 깊이도 신기하지만, 입체적인 스토리 전개의 변화무쌍한 방향 또한 신선함을 넘어 통쾌함까지 제공한다. 여기에 시시때때로 진행하는 브랜드웹툰 프로젝트와 학습만화 버전까지 조석은 늘 새로운 영토의 범위를 갱신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의 소리’

항상 그의 작품에는 지질한 캐릭터가 캐스팅된다. 대사와 표정도 한결같이 엉뚱하고 파격적이며, 배경과 연출 또한 체계적인 완성도와 정교한 미학보다는 가성비가 우선이다. 그래서 더 지질한 캐릭터의 노스탤지어가 독자의 공감을 양산한다. 조석은 그림의 역동성보다 대사의 기발함이 스토리텔링의 기대감을 광폭화시키는 효과, 최고의 ‘가심비’를 느낀 독자들이 그의 카운터펀치에 휘청거리는 감성을 즐긴다. 10대의 환호 속에서 지금의 독자들이 중장년층이 될 때까지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은 매일 더 진화하는 스토리의 반전과 생각의 여백을 인정하지 않고 파고드는 데쿠파주(종이를 오려 붙이는 장식 기법)식 편집으로 완성도를 높혀간다.

네이버웹툰과 함께 시작한 오랜 역사가 1200회를 넘어서고, 축적된 작품의 분량이 꽤 많은 확장과 융합, 변형 등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다. ‘마음의 소리 레전드 100’ ‘마음의 소리 베스트콜렉션’ 등 다시보기 상품들의 편집 노하우가 다른 웹툰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전달하고, 독자들 또한 다양한 상품 서비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저작권이 확장되고, 그러한 상품 전환의 성공사례가 기존 작품의 스타성을 배가시킨다. 10대에서부터 중장년층까지 독자층 또한 두터워지고 있다.

586세대가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적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숨기고 싶은 청년의 부끄러움이 함께 교차하는 극초단파적 서사가 바로 ‘마음의 소리’에 있다. 실제 중장년층이 군사정권의 비이성적 정치 상황하에서 보냈던 시간에서는 조석의 작품들이 갖는 자유로움과 발랄함이 적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후 세대가 겪은 군사정권과 아웅산 테러, KAL기 격추 사건 등의 간접적 전쟁 트라우마와 완전히 유리된, 철저하게 평화와 초고속성장 시대에 부족함 없이 살아온 세대의 반증과 경험의 공감대는 ‘마음의 소리’를 마라톤의 지치지 않는 주자처럼 계속 달리게 한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중장년층이 보면서 느끼는 레트로 감성은 어릴 때 주위에서 보았던 안타까움과 아픔 같은 타임머신의 공감 때문이다. 1960~70년대에는 정전이 많았다. 시장마다 밀수된 외제가 공급되었고,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일상을 통제했다. 그런 일상의 기억들은 드라마의 북한 현지 묘사를 보며 레트로에 빠지게 한다. 그런 레트로를 공감하는 장년층들이 조석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정서적 충돌과 몰이해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석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응용과 리모델링을 제안해야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인싸’가 될 수 있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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