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 큰고니가 겨울을 나기 위해 비행하는 거리다. 지구 둘레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큰고니들은 겨울마다 이동한다. 화려해 보이는 날갯짓 뒤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큰고니들이 시베리아에서 20여일을 날아 도착한 곳은 한반도 서쪽의 대형 간척지인 천수만. 이곳은 1987년 완공된 간척사업으로 형성됐다. 과거 갯벌이던 천수만은 현재 대단위 농경지로 변해 있다. 큰고니를 비롯해 천연기념물 24종과 멸종위기종 30여종을 포함해 215종 약 15만 개체의 조류가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천수만이 한반도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된 것은 풍부한 먹이와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겨울 철새의 진객이라 불리는 황새 또한 천수만을 찾는다. 황새는 국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천연기념물 제199호다. 매년 20여 마리가 이곳에서 월동한다. 예부터 길조로 여겨진 황새는 최근 활발한 복원운동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원도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의 철새도래지는 서해안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해안에서 월동하는 철새들은 길을 잃은 새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은 그 수가 적고 기운도 많이 빠져 있는 상태로 한반도에 도착한다. 물수리와 흰꼬리수리의 일부 개체가 주로 여기서 겨울을 보낸다.
충남 서산버드랜드 한성우 주무관은 “한국을 찾는 겨울 철새 개체수는 조금씩 늘고 있지만 지역별 변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서식지 주변 개발과 먹이 상황에 따라 철새들이 지내는 곳이 바뀌고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수만·남대천=사진·글 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