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첫 출근이기 때문에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앉아 있고 싶었다. 앞서 세 번의 회사를 절대 허투루 다닌 게 아니었다. 처음 한 달이 중요했다. 이때 일찍 출근해 두면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늦게 와도 ‘원래 일찍 출근하는 앤데 오늘은 좀 늦네’가 되고….” 요즘 힙한 소설가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된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돼 첫 출근하는 날, 월급이 빠듯함에도 행여 늦을세라 과감히 빈 택시를 세우는 주인공에게서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산업화로 출퇴근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출퇴근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한 풍속도가 됐다. 서울 광화문은 그렇게 지하철을, 버스를, 혹은 자가용을 타고 허겁지겁 일터로 모여드는 대한민국 샐러리맨 집결지 1번지다. 소소한 기쁨이 있지만, 짜증과 분노, 스트레스를 더 많이 느끼는 일터로 우리는 매일 나간다.
세계서 가장 큰 해머링맨… 공공 조각의 성공 사례
광화문 흥국생명 앞 거대한 키네틱 조각물 ‘해머링 맨(Hammering Man·망치질하는 사람)’은 그런 샐러리맨의 자화상이다. 검고 납작한 형상을 한 조각물은 어깨를 약간 구부린 채 오른손을 들어 아주 느린 동작으로 망치질을 한다. 손에 들린 것은 망치이지만 그것은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모든 노동의 상징일 뿐이다. 누군가의 노트북, 누군가의 용접기일 수 있다.
무게 50t, 높이 22m의 이 거대한 조각물은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78)의 작품이다. 작가는 크기가 각기 다른 해머링 맨을 미국 시애틀,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일본 도쿄 등 세계 11개 도시에 설치했는데, 2002년 세계에서 7번째로 세워진 서울의 조각물이 가장 크다.
흥국생명은 당시 ‘1%법’(1만㎡ 이상 건축물의 신·증축 시 건축 비용의 1% 범위에서 회화, 조각 등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법)과 별도로 이 조각을 수주할 정도로 통이 컸다. 언론은 ‘광화문서 망치질하는 22m 거인’ ‘서울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물 공공미술’이라며 호평했다. 당시 기자이던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작품이 선 자리가 너무 건물 쪽에 붙어 보로프스키 작품 특유의 강한 실루엣 맛이 약화된 점이 아쉽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흥국생명은 2008년 해머링 맨의 인체 윤곽이 멀리서 더 잘 보이도록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도로 쪽으로 5m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 거대한 철제 조각상은 망치질하는 데 드는 전기료, 보험료 등 유지비만 1년에 7000만원가량이 든다고 한다. 설치와 이전, 유지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기업 오너의 미술 애호가 거리의 공공 조각의 수준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하는지 웅변하는 사례다.
거대한 크기와 느린 동작이 주는 ‘심쿵’의 위로
나만 그런 건가. 광화문에서 문득 신문로 쪽을 보다 해머링 맨이 눈에 들어오면 ‘심쿵’해진다. 그 거대한 인체 형상이 주는 위로가 있다. 묵묵히 망치질하는 행동은 어떤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얘기했듯이 그것은 우리 노동자의 상징이다. 전통적인 노동자의 이미지를 사용해 노동의 신성함과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조각가가 아무리 그렇게 주장했대도 작품 자체의 예술성이 없다면 그런 감동은 전달되지 않았을 터다. 감동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선은 크기에서 온다. 현대미술에서 스케일은 중요한 요소다. 광화문 해머링 맨은 24층짜리 흥국생명 빌딩의 6층까지 닿는 엄청난 키다. 도심 빌딩 사이를 성큼성큼 걷는 것 같은 큰 키는 블록버스터 영화 속 킹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인체 조각이 ‘걸리버 여행기’ 속 거인처럼 서 있으니 그걸 보는 평범한 관람객은 아연 영웅이 되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 서울 해머링 맨은 프랑크푸르트 것(21m)보다 1m 더 크다. 작가는 카네기멜론매거진 2002년 봄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해머링 맨의 키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한다. 시애틀미술관 앞에는 48피트(14.6m), 스위스 바젤 스위스은행연합회 앞에는 44피트(13.4m)짜리가 있다. 그게 그 빌딩에 맞는 사이즈”라고 했다.
두 번째는 아주 느린 동작이다. 해머링 맨은 60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 오른손으로 천천히, 천천히 팔을 내리는 동작은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성찰적 효과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나의 노동을 돌아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그림자극을 보는 듯 얇고 검은 몸이 주는 시적인 힘이다. 작가는 강철로 만들어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분자맨(Molecule Man)’이 은색 알루미늄 재질로 반짝거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 작가는 재료의 물성이 주는 다른 효과를 기대한 것인데, 이 거대한 인간 형상은 그림자처럼 얇고 검어서 조각품이 주는 자기 성찰적 기운을 강화시킨다. 동시에 중심에 서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느끼는, 노동하는 현대인의 고독을 상기시킨다.
네 번째는 조각물의 발이다. 발은 굳건히 대지에 박힌 듯 큼지막하다. 거구에 비해서도 크기가 크다. 그 불균형이 주는 안정감은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노동의 세계에 대한 견고한 믿음 같은 걸 준다. 흔들리는 당신의 마음을 다잡고 거기, 그 직장에 단단히 서 있으라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나는 손이 아닌 발에서 느낀다. 그러니 보고서를 올렸다가 과장한테 깨졌다면, 광화문 해머링 맨을 보고 돌아가는 것도 좋으리라.
미국 출신 조각가… 인체 조각의 새로운 개척자
해머링 맨의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보로프스키는 카네기멜론대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60년대의 20대 시절에는 당대 주류 미술이던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에 심취했다. 특히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인 솔 르윗을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개념미술에서 벗어나 강렬한 인체 형상의 작품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회화든 조각이든 그의 작품엔 인체 형상이 있다. 회화는 베를린 장벽을 캔버스 삼아 그린 ‘달리는 사람(Running Man)’이 대표적이다. 조각가로 더 명성을 얻고 있는데 해머링 맨이 가장 유명하다. 해머링 맨은 1979년 뉴욕에서 가진 개인전에 선보인 ‘노동자(Worker)’라는 나무 조각이 원형이다. 강철로 제작하면서 해머링 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해머링 맨이 상징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청년 취업의 무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전체 실업자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7년째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해머링 맨은 그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지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지금 망치질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