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말년에 치매로 고통을 겪은 유명인들이다. 재미교포 코미디언 자니윤, 영화배우 윤정희도 현재, 기억을 훔쳐 가는 이 병과 싸우고 있다.
누구도 피하지 못한 병이라서 그럴까. 고령화사회의 그늘, 치매 문제가 세계 각지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만 60~69세 노인의 43%(2014년 기준)가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치매를 꼽았다. 2위에 오른 암(33%)보다도 약 10%포인트 높은 응답률이었다. 60대 이상 노인층만이 아니었다. 만 50~59세 장년층도 앞으로 가장 피하고 싶은 질병 1순위로 치매(40%)를 골랐다. 이 연령대에서도 암(35%)은 2순위로 밀렸다. 실제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노인이 2018년 현재 약 73만 명에 이르고, 비교적 젊은 59세 이하 환자들도 무려 7만여 명이나 된다. 치매는 굳이 외면하고 싶어도 더 이상 ‘나 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골칫덩이로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이사장 박진식) 치매전문센터 권순재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말로 고령화사회의 그늘, 치매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권 센터장은 19일 “성공적인 치매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원인 감별”이라며, “치매 노인의 조기재활을 위해 내과, 신경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타 과목 전문의들과 수시로 협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센터장은 전북의대를 졸업하고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로 활동하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으로 일터를 옮겼다. 전문진료 분야는 치매 등 노인 정신건강이다. 치매 위험군 대상 인지개선 및 재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이에 필요한 의미 기억망 알고리즘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현재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겸 치매전문센터장, 인천시 계양구 효성인지재활센터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치매는 어떤 병인가?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진 것을 치매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억력 저하가 치매의 특징적인 증상이긴 하지만,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시·공간에 대한 감각장애, 성격변화, 계산능력 저하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상태를 치매라 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약 9.2%가 치매를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게 일차성 치매와 이차성 치매로 나뉜다. 일차성 치매란 뇌 자체의 퇴행성 변화로 오는 치매를 가리킨다.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 치매, 루이소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차성 치매는 말 그대로 어떤 질환의 한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치매다.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인한 혈관성 치매, 뇌종양으로 인한 치매, 뇌수두증으로 인한 치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가장 흔한 치매는 전체의 약 55~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약 26%의 혈관성 치매다.
뇌종양이나 뇌수두증 등 명확한 원인질환을 개선할 수 있는 경우에는 완치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치매는 완치하기가 힘들다. 독성물질의 축적 및 이로 인한 뇌의 손상, 또는 뇌졸중 등에 의해 손상된 신경세포를 되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조 증상은?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3종류가 있다. 첫째 사실이나 상식을 떠올리는 것, 둘째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삽화기억, 그리고 자전거를 타거나 요리를 하는 등 의식하지 않아도 특정 동작과 절차를 자동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절차기억이다.
대부분의 치매는 초기단계에서 삽화 기억의 저하가 두드러진다. 특히 과거의 기억보다는 최근 들어 직접 겪은 사건이나, 한 번 가봤던 장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방금 겪은 일조차 생각이 안 나서 자꾸 되묻거나 물건을 둔 장소를 잊어 헤매는 증상을 반복하게 된다.
일츠하이머병은 이런 변화를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치매 유형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 등 비정상적인 독성 물질들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를 서서히 손상시키는 퇴행성 신경질환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어떻게?
“알츠하이머병을 특정 검사 하나로 진단하는 방법은 뇌생검(뇌의 일부를 잘라내어 직접 검사하는 방법) 외에는 아직은 없다. 현재로선 전문의가 치매를 유발하는 다른 질환들을 하나씩 배제시켜 나가며 문진과 신경심리검사 결과, 뇌영상검사 등을 종합하여 진단하는 게 최선책이다.
경험이 많은 신경과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상세한 문진(환자의 상태나 병의 경과를 물어서 기록하는 것)과 신경학적 진찰, 신경심리검사 등을 병행하면 약 90%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이 가능하다. 전산화단층촬영(CT), 핵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CT), 뇌파(EEG) 검사 등도 진단에 도움이 된다.
주의할 것은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챌 정도가 된다면 이미 질환이 시작된 지 수 년 이상 지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뇌 영상 검사에서도 이상소견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병 초기 환자에 대한 문진과 신경심리검사가 조기 진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료는 가능한가?
“가장 흔한 치매인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는 완치가 어렵다. 하지만 도네페질, 갈란타민, 리바스티그민, 메만틴 등의 약물을 초기에 사용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치매 중기 때 많이 겪는 우울, 불안, 망상, 환각 등과 같은 증상들도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정신병약물 등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재활치료 및 약물치료를 통해 일부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물론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예방 노력이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흡연, 심방세동 등의 뇌졸중 위험인자를 차단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쓰이는 콜린분해효소억제제가 혈관성 치매 증상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손상을 받은 부위에 따라 우울, 불면, 성격변화,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이 나타나는 데 이 역시 알츠하이머병과 마찬가지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으로 조절해준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점은?
“건망증은 어떤 사실을 머리 안에 저장해 놓고, 그 기억을 불러내는 단계에 장애가 있는 상태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생각을 더듬어 가다 보면 잠시 잊었던 사실을 기억해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치매로 인한 기억장애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어디서 몇 시에 모이기로 했지?’ 이렇게 되면 건망증이고, ‘뭐라고?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어?’ 하면서 펄쩍 뛰면 치매에 의한 기억장애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양성 건망증은 주로 기억력에 국한돼 나타나지만. 치매로 인한 기억장애는 점차 언어, 판단력, 시·지각 인지기능 등으로 손상 범위가 넓어지고 심해진다는 것이 다르다.”
이기수 쿠키뉴스 대기자 elgi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