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이발하고 잠자고…’
작품만 보는 것을 넘어 근대 문화를 체험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엔 호텔 문화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에 호텔이 등장한 개항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호텔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전시다. 자료만 나열하면 따분해질 전시를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를 통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과거의 문화를 해석한 작가들의 순수 미술 작품까지 곁들여져 한 마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시다.
옛 서울역사를 리모델링한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호텔사회’전 얘기다. 일종의 사회문화사를 전시로 풀어보는 것으로, 지난해 이곳에서 열렸던 ‘커피사회’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마련한 시즌 2의 성격이 짙다.
커피사회는 통상의 전시 관람객 수치 3배를 넘는 35만여명이 관람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무료로 즐기는 ‘가배(커피의 옛말)’가 관람객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호텔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지만 그 안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 교유 문화도 근대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스파, 온천, 수영장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은 호텔이 조선 사람에게 던졌던 문화적 충격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 이피는 바를 차려 바텐더 퍼포먼스를 펼친다. 인터넷 신청을 통해 그가 만든 칵테일을 공짜로 맛볼 수 있다.
‘그릴홀’에서는 1960년대에 시작된 호텔 극장식당을 모티브로 호텔이 공연과 식문화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옛 이발소 풍경을 재현한 ‘이발사회’에서는 근현대 호텔이 선도했던 미용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다. 바리깡 없이 가위질로만 머리를 깎는 40년 경력의 이발사 등 여러 팀들이 무료로 이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귀빈실은 아카이브 전시장처럼 꾸며져 국내 최초의 호텔인 손탁 호텔에서 쓰던 찻잔, 니트로 짠 초기 수영복 등 호텔 관련 다양한 물품들을 볼 수 있다. 호텔 안에 있었던 여행상품점을 재현한 코너도 흥미롭다. 금강산과 유라시아 관광 팸플릿을 재현했고, 189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민영환이 남긴 기행문 ‘해천추범(海天秋帆)’을 토대로 민영환을 가상 인터뷰한 글이 작품으로 나와 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패러디해 구보가 금강산을 여행한다는 픽션 ‘소설가 구보씨의 여행’도 읽는 재미가 있다.
잠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호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숙박 아닌가. 그런 기능을 재해석해 백현진 작가는 2층 전시 공간에 수십개 매트리스를 쌓아올려 관람객들에게 낮잠 자는 경험을 해보도록 했다. 미술 작가이면서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인 재주꾼 백현진이 펼치는 퍼포먼스를 놓치기엔 아깝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개장된 옛 서울역사는 내부가 석재로 마감돼 있는 등 건물 자체가 주는 기운이 워낙 세다. 현대미술 작품이 그 기세에 눌리는 등 전시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커피사회’ ‘호텔사회’는 건축물이 가지는 근대적 성격을 전시 주제와 자연스럽게 버무리면서 관객 참여적 성격까지 추가해 대중 친화적 전시의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3월 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