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철물점과 예술가



길을 걷다가 길가의 가게에 시선이 멎었다. 2층짜리 연립주택 1층에 있는 철물점이었다. 처음에는 철물점이라는 것을 몰랐다. 철물점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기도 했지만 살면서 이런 외관을 갖춘 철물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꼭지, 샤워기, 자물쇠, 형광등 같은 철물점에서 파는 물건들과 멜로디언, 스피커, 기타 같은 음향기기와 악기들을 벽면에 빼곡히 달아 꾸민 그 가게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 같았다. 벽면에는 ‘모기장 수리’ ‘전기 공사’ ‘수도꼭지 교체’ ‘출장 수리’와 같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밤에는 초록빛 등을 켜놓아 철물점은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이튿날 나는 다시 철물점에 방문했다. 그곳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철물점 문을 열려고 하자 뒤에서 차를 닦던 사람이 말했다. “뭐 사시게요?” 동네 주민인 줄 알았는데 철물점 주인인 모양이었다. 나는 우물거렸다. 사실 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도 뒤따라 들어서며 다시 물었다. “어떤 거 찾으세요?” 철물점 내부는 생각보다 좁았다. 나는 눈앞에 있는 3구 멀티탭을 가리키며 이것을 달라고 했다. 사포도 하나 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사포를 찾는 동안 나는 철물점 내부를 훑어봤다. 진열된 물건들은 다른 철물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공간을 나누듯이 한쪽에 쳐진 보라색 커튼 위에는 ‘the guitar’라는 검은색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나는 커튼을 걷고 싶은 유혹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혹시 철물점 주인은 기타리스트가 아닐까. 나는 그곳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라색 커튼 안에서 기타를 치다가 전화를 받고 나가 수도꼭지를 수리하고 돌아와 다시 커튼 안으로 들어가는 기타리스트를 떠올렸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그는 보라색 커튼을 경계로 예술과 생활이라는 두 가지 공간을 넘나드는 사람일 것이었다.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철물과 예술은 사실 아주 밀접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의경 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