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7월부터 6개월간
바이러스항체·유전자 검사
약 먹으면 완치율 95% 이상
C형 간염, 간암의 주범
감염자 대부분 감염 몰라
간암을 일으키는 C형간염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국가검진 시범사업이 이르면 7월부터 시작된다. C형간염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 56세 건강검진자 30만명이 대상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7일 “올해와 내년에 걸쳐 6개월간 C형간염 바이러스 항체검사와 유전자(RNA)검사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켜 시행하는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질본 관계자는 “국민건강영향조사에서 C형간염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연령대인 만 56세 국민이 대상이며 시범사업 예산 9억5000만원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만 56세 국가건강검진 대상은 84만~85만명으로 추산된다. C형간염 시범 검진이 가능한 인원은 이들의 20% 정도다. 질본은 올해와 내년 특정 기간(각각 3개월)을 정해 해당 연령대 각 15만명씩 모두 30만명에 대한 C형간염 항체검사와 유전자검사를 무료로 시행하겠다는 게 질본의 잠정 계획이다.
항체검사만으로는 인체의 바이러스 보유 여부만 알 수 있으며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C형간염이 확진된다. 항체검사는 1인당 4000원, 유전자검사는 3만6000원의 비용이 든다. 정부는 두 가지 검사 비용 약 4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질본 관계자는 “내년 6~8월까지 시범사업을 끝내고 평가를 거쳐 보건복지부 국민건강검진위원회에 상정해 국가검진 본사업 도입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예방 백신은 없지만 치료제로 완치가 가능한 C형간염을 국가건강검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한간학회 등 전문학회의 요구가 수년째 이어지자 시범사업으로 국가검진의 유효성과 비용 효과성을 따져 보겠다는 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C형간염 환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의료비용을 줄이고 감염 확산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C형간염 국가검진 시범사업은 2017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엔 35개 지역에서 만 40세, 66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시범사업을 통해 C형간염 유병률은 1.6%로 집계됐다. 국내 C형간염의 평균 유병률은 0.6~1%대로 추정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유병률은 국가검진 도입의 걸림돌이 됐다. 국가건강검진원칙 중 ‘유병률 5% 이상’ 기준에 맞지 않고 비용 효과성 근거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한간학회는 “C형간염이 발견되기도 전인 1968년 만들어진 세계보건기구(WHO)의 원칙을 참고로 한 ‘유병률 5%’ 기준을 고수하는 건 구시대적”이라고 꼬집는다.
과거엔 C형간염 치료 주사를 매주 맞아도 완치율이 70~80%에 그쳤지만 지금은 경구용 약을 8~12주만 잘 먹으면 완치율이 95% 이상으로 부작용도 거의 없고 치료 효과도 좋다. 진단도 쉽고 치료도 잘 되는 등의 기대효과가 큰 경우 국가검진항목 도입시 유병률 5% 원칙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7년 제정된 WHO의 ‘C형간염 검진 가이이드라인’에서도 국가건강검진과 연계한 항체 검사의 필요성을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다. 대한간학회 심재준(경희대병원 교수) 홍보이사는 “조만간 C형간염 검진 시범사업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정부 계획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증상없어 간암 진행된후 발견 많아
C형간염은 간암의 주요 원인이다. 피검사를 통해 바이러스 항체 유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본인이 항체검사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질환의 ‘무증상’ 특성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감염을 의심하고 진단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C형간염으로 증상을 느끼는 경우는 6%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C형간염 환자는 약 30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이 가운데 치료받는 이들은 10명 가운데 약 2명(4만5000~7만명)에 불과하다. 감염자 상당수는 감염 여부도 모른 채 병을 키우다가 뒤늦게 만성간염, 간경화, 간암 등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기 일쑤다.
C형간염은 같은 만성 바이러스 간질환인 B형간염 보다 관리가 더 어렵다, B형간염은 1995년부터 국가예방접종사업을 벌여 예방이 가능해졌고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돼 진단과 치료가 활발하며 환자도 감소 추세다.
C형간염은 B형간염 보다 만성화 경향이 더 높고 바이러스 감염 3년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간암 발생률도 높아진다. 게다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적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이 어려워 마땅한 예방법이 없는데다 국가건강검진에도 포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C형간염은 혈액 매개 감염병이다. 손톱깎이, 면도기 등 혈액이 닿을 수 있는 생활도구들을 공동사용하는 경우 감염 위험성이 높아진다. 또 상대적으로 감염관리와 통제가 어려운 의료기관 밖 무허가 문신이나 불법시술, 반영구화장, 침습적 시술 등도 바이러스 감염 및 전파 위험 경로로 꼽힌다. C형간염 감염의 약 40%는 전파 경로가 불분명하다.
아울러 C형간염 환자의 출혈이 동반될 수 있는 치과 치료, 한의원의 부황·침치료, 영양주사 등도 바이러스 전파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국내 주사침 상해 환자 10명 가운데 2명꼴(12.9%)은 C형간염 양성 환자로 감염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실제 2015~2016년 다나의원 등에서 1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성관계나 태아 수직감염은 가능한 전파경로이긴 하지만 B형간염이나 에이즈 바이러스(HIV)보다는 위험이 낮다. 가족 중 C형간염 환자가 있을 경우 배우자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전염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이밖에 마약 오남용자도 고위험군이다.
이제 8~12주 먹는 약으로 완치 가능
C형간염 치료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기존엔 C형간염 치료에 6개월~1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고 주사제로 치료 과정도 힘들었고 치료 성공률도 낮았다.
하지만 2014년 90~100%의 높은 치료 성공률을 보이는 경구용 항바이러스 치료제(DAA)가 개발됐다. 국내에도 2015년부터 이들 치료제에 건강보험(환자 부담 30%)이 적용됐다. C형간염은 이제 조기에 진단받아 치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완치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8년엔 C형간염 바이러스 유전자형(1~6형)에 관계없이 8주간 복용하면 99% 치료되는 약제도 나왔다. 이런 혁신적 치료제의 개발로 WHO도 2030년까지 C형간염 퇴치를 선언했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김강모 교수는 “C형간염은 이제 지구상에서 퇴치할 수 있는 감염병이 됐다. 하지만 국내에선 감염자가 자발적으로 검진받아 치료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개입과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간경화·간암으로 악화 가능성 알고 있다” 58% 그쳐
C형간염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겨우 절반을 넘는 수준에 그쳤다. 일반인 10명 가운데 9명은 C형간염 검사를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하는 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발간된 ‘주간 건강과 질병’을 통해 일반인 1000명과 내과계열 의사 및 간호사 등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C형간염 인식도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일반인의 C형간염 인지도는 34.0%로 2009년 국립암센터 조사에서 10%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A형간염(72.8%), B형간염(79.3%) 등 다른 간염에 비해서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질환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C형간염의 증상(23.5%), 감염경로(29.2%), 치료법(19.8%)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특히 C형간염이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58.3%에 불과했다.
C형간염은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아 예방접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42%만이 인지하고 있었다. 조기 발견이 어려운 C형간염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자 항체검사를 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4%였다.
C형간염 항체검사를 국가검진 항목에 포함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87.6%, 의료인의 78.3%가 긍정적이었다.
질본은 “일상생활 중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정보 제공 및 교육·홍보 강화, 국가검진 항목 포함 검토 등 C형간염 조기 발견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