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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트럼프가 사랑했던 주지사의 패배



미국 켄터키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다.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에 나와 두 번이나 승리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켄터키주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2016년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는 켄터키주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거의 더블 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트럼프는 120만표를 모았지만 힐러리는 62만표에 그쳤다.

이런 켄터키주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5일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현역 주지사였던 매트 베빈이 민주당의 앤디 베셔에 아깝게 졌다. 베빈은 재검표까지 요청했으나 5136표 차의 패배는 달라지지 않았다. 베빈은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주지사였다.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민주당의 베셔가 트럼프가 사랑하는 주지사를 권좌에서 내쫓았다”고 평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 선거 전날 켄터키주를 찾아 베빈 지원유세를 펼치며 적극 지원했다. 그래서 일부 미국 언론은 선거 결과를 트럼프와 연관시켰다. “켄터키주에서 트럼프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기사가 나왔고,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의 패배가 아니라 베빈의 패배”라는 분석이 우세해졌다. 공화당이 후보를 잘못 뽑았다는 것이다.

사실 베빈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주지사였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트가 지난해 2분기 실시한 조사에서 베빈은 미국 50명의 주지사 중 지지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켄터키주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6%에 달했다. 지지한다는 대답은 32%에 그쳤다. 트럼프는 베빈이 인심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거 전날 지원유세를 감행했다. 트럼프는 유세에서 “베빈은 골칫덩이지만 그래서 당신들은 그가 필요하다”고 유머를 섞어 강조했다. 고집불통의 베빈을 뚝심 있는 주지사로 돌려 말했지만 허사였다.

베빈의 공직 경험은 켄터키 주지사를 한 번 한 것이 전부다. 군인 출신인 그는 투자 사업가로 변신해 돈을 벌었다. 켄터키주에서 보수주의 유권자운동 단체인 ‘티파티(Tea Party)’를 이끌면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티파티는 오바마 재임 시절에 세금 인하와 작은 정부 등 보수적 가치를 내걸면서 세력을 확대했다. 그 덕분에 베빈은 2015년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승리했다.

베빈은 뼛속까지 보수주의자였다. 낙태를 반대하는 그는 10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지나친 소신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베빈은 켄터키 주정부의 의료보조금을 깎았다. 베빈은 막말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가 우러러보는 트럼프와 비슷한 대목이다. 베빈이 2018년 4월 교사연금을 삭감하는 법안에 서명했을 때 켄터키주 교사들은 파업을 벌였다.

베빈은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파업을 비난하며 “켄터키주의 어딘가에서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한부모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돌볼 돈이 없기 때문에 집에 홀로 남은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 다쳤거나 독극물을 삼켰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일부 어린이들은 처음으로 마약을 접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비판이 쏟아졌고, 베빈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인기는 바닥을 쳤지만 베빈은 주지사 선거를 앞뒀던 지난해 5월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다시 뽑혔다. 현역 프리미엄에다 트럼프가 사랑하는 주지사라는 점이 먹혔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의 여야도 인재 영입에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하지만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것보다 민심을 잃은 현역 의원들을 퇴장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 ‘누구의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줬다가는 역풍을 맞을 것이다. 트럼프가 사랑했던 주지사의 패배가 주는 교훈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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