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장인 장모가 전남 여수에서 역귀성을 했다. 바리바리 싸 온 음식으로 맛있고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그런데 첫 식사 자리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정치에 조금도 관심이 없고 음식 만들기나 집안일, 자식들 걱정밖에 모르던 70대 중반의 장모가 대뜸 “자네는 이번 검찰 인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왜요? 어머니”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장모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과 말싸움을 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검찰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검찰 인사에 문제가 많지만 검찰 개혁 여론도 많다고 했더니 “그게 뭔데 나중에 할 것이지 지금 하냐”고도 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난은 증오나 적개심에 가까워 보였다. 장인어른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라고 물었다. 저런, 장모는 특정 종합편성채널을 반복적으로 시청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별로 접촉도 하지 않고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장모는 이 채널 시사 프로그램도 자주 보는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그 방송에 채널을 맞추곤 했다. 자주 접한 어느 토론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품평을 하기도 했다. 언론의 영향력과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장인 장모에게는 방송이 한쪽으로 치우친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한 방송만 보지 말고 이 방송 저 방송 골고루 보라고 권유했다. 정부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잘못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제발 망하기를 바라면서 비난만 하는 언론도 있다고 했다. 진보 정권에서는 보수 언론이, 보수 정권에서는 진보 언론이 종종 그런다고 했다.
검찰 개혁에 은근히 반대하거나 일언반구도 안 하는 방송을 볼 거면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같은 것만 보고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은 차라리 뉴스전문 채널을 보라고 했다. 어설픈 제안이었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위 눈치를 보느라 그랬는지 장모는 설 연휴 동안 몇 차례 뉴스전문 채널을 켜놓기도 했다. 하지만 설 연휴 마지막 날 기차역으로 배웅하기 직전 식사 자리에서도 정치 얘기를 했다. 넌지시 서두를 꺼낼 때부터 무슨 얘기를 할지 알 정도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를 반복하곤 했다. 정파성이 강한 특정 매체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확증편향 비슷한 것이 시골 할머니들에게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장인 장모에게 이따금 안부 전화를 해야겠다. 요즘은 어떤 방송을 보는지도 물어볼겸.
신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