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등굣길 풍경



아이 학교의 교통지도 봉사는 동네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직업상 봉사를 하려면 진료 없는 날로 스케줄을 맞추고 휴가도 내야 해서 처음에는 이 제도가 참 껄끄러웠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종일 건물 안에서만 머물며 어둑한 시간대에 출퇴근하다가 날 밝은 오전의 동네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에도 나름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방학 중에는 안 한다지만 그래도 쨍쨍한 햇빛 아래이거나 살이 에는 추위 속에서는 아무래도 몸이 힘든데, 예년보다 추위가 덜한 요즘에는 40여분 한 자리를 지키는 것도 할 만하다.

길 위 아이들 모습은 정말 각각이 다르고도 아름답다. 엄마 손을 잡고 함께 나왔지만, 반짝반짝 단장한 누나와 달리 아직 눈에 잠이 가득한 어린 동생의 까치집 머리와 두꺼운 코트 아래 잠옷 차림에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나온다. 어리광을 피우며 부모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가다가, 친구들과 마주한 순간 반전 영화의 주인공마냥 부모 소매를 탁 놓고 으스대는 연기의 귀재들도 있고, 자기 반을 제대로 찾아가기는 할까 싶게 아직 아기 티를 못 벗은 어린 아이들도 보인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우르르 또래들과 뛰어가는 아이들의 까르륵 웃음소리에는 덩달아 나도 즐겁다가, 왜인지 멀찍이 떨어져 땅만 보며 길을 건너는 아이의 어두운 표정에는 걱정의 오지랖이 앞선다. 학교 정문 앞에 떡 하니 세운 차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려는 찰나, 힘겹게 목발을 들고 나오는 아이 모습에 역시 무턱대고 상황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가다듬기도 한다. 도로로 시선을 옮기면 마스크 차림으로 칼같이 신호를 지키는 대중교통 운전사분들도 있는 반면 학교 바로 앞이건만 창문을 열고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지정된 위치에서 시간의 변화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헐레벌떡 뛰어가는 아이와 학부모들의 모습도 띄엄띄엄 줄고 어느새 도시는 학생들이 아닌 어른들의 생활터가 된다.

굳은 다리도 풀 겸 안내봉과 조끼를 반납하러 가는 길에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볍게 뛰어본다. 이렇게 아담한 곳이 어린 시절에는 왜 그리도 커 보였을까. 운동장 가득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더없이 경쾌하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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