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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영국의 고립



영국이 지난 31일 밤(현지시간)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했다.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고, 1993년 EU 출범 이래 첫 탈퇴국이다.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의 거주 취업 교육이 자유로운 EU시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영국인들은 그 지위를 잃어버리게 됐다. 영국에 정착한 다른 EU회원국 국민 360만여명도 취업허가나 영주권을 따로 받아야 하는 등 불편함은 마찬가지다. 유럽 통합이란 개념을 묵직하게 처음으로 제시한 이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다. 대서양 건너 미국의 힘을 일찍이 인식한 처칠은 미국을 오가면서 국경과 관세가 없는 거대한 단일시장이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가를 깨달았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뒤 1946년 연설에서 하나의 유럽 즉 미합중국에 비견할 유럽합중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처칠의 구상과 지금 EU의 상황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역사적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처칠을 우상으로 여기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를 주도했다는 건 역사적 아이러니다.

어쨌든 영국은 다시 한번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 정책을 택했다. 영광스러운 고립은 19세기 영국의 외교정책으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3국 동맹과 프랑스·러시아의 2국 동맹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어느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고 해외 경영에만 주력했던 영국의 상황을 이르는 표현이다. 영국은 자신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제외하고, 영국이 속박된 어떤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저에는 우월성이 짙게 배어 있다. 산업혁명 발상지로 식민지와 해상 무역을 바탕으로 한때 거의 전 지구적 지배력을 행사한 팍스 브리태니카 시절을 만들어냈고, 2차 대전에서 자유진영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끌어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스스로 잘났고 유럽 대륙과는 다르다는 자존심, 그러나 기축통화에서 밀렸고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 대륙을 주도하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괴감, 그런 우월주의에서부터 싹트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가 난민 문제를 기폭제 삼아 영국을 유럽에서 끄집어낸 게 아닐까.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에서 패배 이후 유럽 대륙에 관여하지도, 편입되기도 싫다는 그들의 전통적 사고는 과연 좋은 결과로 나타날까, 아니면 나쁜 결말로 이어질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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