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차를 선물 받았다. 고운 꽃을 조심스레 골라 긴 시간 정성으로 말렸을 시간과 마음이 느껴졌다. 추운 겨울, 유리병을 열고 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꺼내어 뜨끈한 물병에 넣고 기다린다. 햇빛과 바람에 살살 말려 있던 꽃이 다시 한 잎 한 잎 피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더해진다. 꽃이 다 피고 색이 우러나면, 또 다른 고마운 분께 선물 받은 도기잔에 차를 따른 뒤 눈으로, 향으로 한 모금씩 마시며 몸과 마음을 덥힌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였건만 감사한 일들과 분에 넘치는 사람들이 찻잔 위로 떠오른다.주변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은 드물고 비싼 선물 덕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습관을 알고 신경 써준 마음이 느껴지는 것. 자연스럽게 생활에 어우러지는 것들. 감기에 걸렸을 때 따듯한 음료를 건네거나 출출할 때 같이 나누어 먹는 간식.
이런 작은 순간이 엮여 진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삶에서의 성취는 큰 것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이 쌓아 올리는 숲속의 석탑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해, 하루, 순간순간의 우연 같은 돌들이 모여 조금씩 탑을 만들어간다. 거대하고 위대한 석탑, 대단한 예술품일 필요는 없다. 타박타박 작은 돌을 골라 조용히, 천천히 쌓여 이어지는 나만의 만리장성. 왜 이것들을 쌓고 있나, 왜 나만 이렇게 안 될까, 답답하고 힘든 순간에 그만 털썩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따듯한 주변의 손길에 다시 힘을 낸다.
너무 지치면 잘 말려진 꽃송이를 우려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편안한 마음으로 쌓아온 돌들을 둘러보며 빈 공간에 의미를 찾기도 하고, 또 새로운 방향으로 쌓아가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긴 시간 혼자만의 작업에 매몰되어 지칠 때면 다시금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도움으로 나아간다. 나 역시 누군가의 고된 작업에 잠시 숨 돌릴 순간을 주며 살고 싶다. 따듯하고 은근한 차의 향처럼.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