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새롭게 세상 바라보는 시선… 실험·도전의 ‘고독한 무사’

만화가 윤태호는 ‘미생’ ‘이끼’ 등 세상에 대한 독창적 시선을 담은 만화들을 발표하며 한국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사회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본인 작품을 닮은 윤태호는 현실에서도 후배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힘쓰는 든든한 조력자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미생’ ‘이끼’ ‘내부자들’ 만화 컷. 필자 제공



 
영화로 리메이크 된 ‘이끼’ 포스터.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이 그간 우울했던 뉴스들을 뒷순위로 밀어내고, 한국의 창의적 잠재력과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품게 한다. 독특한 앵글과 시선으로 무장한 봉 감독의 콘텐츠는 세상을 ‘새로 보기’ 하는 비판과 저항의 순수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부터 이번 수상작 ‘기생충’까지 모든 작품에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시선이 카메오처럼 숨겨져 있다. 세상을 새로 보는 다양한 시선의 도전이 만화계에도 있는데, 그 전선 최전방에 ‘만화계의 봉준호’, 작가 윤태호가 있다.

장그래 같은 뚝심으로

윤태호는 오랜 시간 나름대로의 세상 보기를 주요한 플롯으로 제시하며 문제작들을 보여주었는데, 실제로는 강풀과 양영순 등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중견작가였다. 그런 그가 오랜 터널을 벗어나 ‘이끼’라는 웹툰 원작 영화로 독자들과 관객, 대중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텐션의 감정’이 아닌 ‘감정의 텐션’을 자유자재로 버무려내고 적재적소에 돌출시키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영화의 앵글로 재현되면서 대중은 윤태호라는 작가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웹툰의 시대를 열었던 포털 다음의 다음웹툰은 시작부터 대표 작가 강풀과 양영순, 윤태호라는 걸출한 시대적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웹툰 혁명을 견인했다. 항상 독자들의 조회 수와 팬덤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윤태호의 작품들이 영화의 원작으로 다시 실현되면서 그 가치를 재평가받게 된 것이다.

강풀 원작의 영화가 기대했던 만큼의 흥행 성과를 얻지 못한 데 비해, 단 한 작품 ‘이끼’로 검증받은 윤태호 웹툰의 저력은 이후 미완성작의 각색본 영화 ‘내부자들’로도 대중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지상파 모두가 거부했던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이야기 ‘미생’으로 케이블 채널 tvN을 드라마 왕국으로 만들어냈다. 모두가 지상파 드라마 원작이 되려면 남녀 간 로맨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협박 아닌 겁박을 할 때도 윤태호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처럼 본인의 방식을 뚝심 있게 고수했다. 색다른 드라마를 만난 대중들은 그런 신선함과 도전정신에 환호했다.

본래 ‘미생(未生)’은 바둑의 전문용어다. 아직 완전한 삶의 상태가 아닌,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상태, 반상의 돌이 갖추어야 할 완생의 최소 조건인 ‘독립된 두 눈’이 없는 상태를 ‘미생’이라 한다. 이처럼 원래 바둑 웹툰으로 기획·취재됐던 작품이 대기업 종합상사 인턴사원의 도전기로 바뀌었고, 청년들의 답답한 현실, 중년 가장의 토로할 데 없는 고독, 직장 내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 갑질 사회의 처연함, 일하는 여성들의 유리천장 등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순들이 직설적인 화법과 작화 풍으로 대중들에게 녹아들었다. 기존 웹툰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사실적 소재와 살아있는 이야기는 윤태호의 취재 노력과 습관적인 디테일에서 나온다. 허영만 작가에게 배웠던 만화 취재 본능이 DNA처럼 살아남아 작품마다 가장 사실적인 캐릭터와 텐션을 만들어낸다.

미래를 향한 그의 바둑돌

‘미생’의 놀라운 성공으로 윤태호(사진)는 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기획하는 여유와 사회적 네트워크의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런 내공을 자신의 작품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만화계 전체의 미래를 내다보며 다음 수를 던졌는데, 현직 웹툰 작가들 중심의 젊은 작가들을 대거 한국만화가협회에 참여시키고 웹툰 키즈들의 대부로서 협회 회장직을 수용했으며, 민간 영역의 후원과 사회 전반의 지지를 만화계로 끌어내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 만화가 편에서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덕션 ‘누룩미디어’를 세웠다. 직접 대표를 맡아 작가-독자-출판사-미디어 유통 플랫폼-콘텐츠 제작사 간 다양한 계약의 현주소를 상식화하고 기존 문제를 공론화했다. 만화 평론을 상설화하고 웹툰 아카데미를 기획했으며, 직접 웹툰 플랫폼도 창업해 자신의 작품부터 실험적으로 연재하기도 했다.

그 작품이 바로 100권을 목표로, 내러티브 교양만화 전집을 지향하며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를 웹툰에 담아낸 ‘오리진: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다. 1권 ‘보온(우주의 기원)’, 2권 ‘에티켓(도적의 기원)’, 3권 ‘화폐(화폐의 기원)’ 등으로 연재되고 있는 ‘오리진’ 시리즈는 나름대로의 시대적 역할과 작품의 차별성으로 독자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아웃도어 브랜드와 함께 남극 이야기를 취재 중(윤태호는 일정 기간씩 남극 살기를 하고 있다)에 있으며, 웹툰 작가들과 함께 ㈜슈퍼코믹스 스튜디오를 창업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비트코인 열풍 속에서는 작가들의 저작권을 투명하게 지켜내고 수시로 작가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암호화폐를 도입할 수 있다고 인터뷰에서 제기하면서 문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연설자로 참여해 자신의 분신 같은 모자까지 벗어가며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도 했다.

윤태호 본인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많은 부분의 진정성은 되레 자신에게 논쟁의 화두로 부메랑이 되고, 그런 이슈들이 다른 정치적 요소들과 만나 전혀 다른 소모적 논쟁에 직면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대부(God father)의 딜레마’다. 굳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사안임에도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해야 한다면 자신이 먼저 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항상 자신을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윤태호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논쟁에서 후퇴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그를 진중하게 따라오는 후배 웹툰 키즈들과 그를 지지하는 만화계 선배들의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무사, 그리고 대부

이야기 발전소 같은 윤태호의 저력은 축적된 내공에서 나온다. ‘야후’와 ‘이끼’의 독특한 앵글과 캐릭터 표정 연출은 음습한 로우앵글의 불편한 표정 하나로 사건의 텐션을 극대화하는 괴력을 보여준다. 이런 축적된 경험은 미완성작 ‘내부자들’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과감하게 재현된다. 실제 윤태호가 제시하는 이야기의 방향은 이데올로기의 발현과 편 가르기 습성, 그런 역사적 반복을 통해 꾸준히 유지되는 사회적 기득권의 태생적 한계를 매 순간 급습한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만들어진 안타까운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사실주의에 입각해 그대로 보여준다. 철저한 취재와 고증, 수많은 인터뷰와 현장의 메모는 작품 속에서 실시간으로 살아남아 독자들을 웹툰의 현장으로 소환해낸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의 세분된 현실들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시퍼런 날처럼 살아 숨 쉰다. 불편한 우리의 모습을 날것으로 굳이 보여주는 윤태호의 작품은 그래서 스타덤을 폭발시키는 대중성보다는 위태로움 속에서 부조리극의 간접적 장치를 실험하는 고독한 방랑 무사의 모습으로 종종 나타난다.

작가 윤태호의 도전과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로운 영역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상력의 활동성을 극대화하며 만화계의 방향을 계속 고민한다. 그리고 묻힐 수 있는 현실적 문제 제기에 앞장선다. 그렇게 많은 일과 작품 연재를 병행하는 윤태호를 보고 쌍둥이 동생이 있을 거라는 농담이 회자되곤 했는데, 실제 쌍둥이 동생이 다른 예술 영역의 아티스트로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기도 했다. 여전히 바쁜 일상에서도 만화 후속세대와 후배들을 위한 강연과 봉사, 사회적 고민을 지속하는 윤태호는 시대적 소명에 선제적으로 응전하는 대부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힘들 듯하다. 논쟁과 도전 과정에서 상처받아 지치지 말기를. 지금처럼 살아있는 열정으로 시도될 그의 다음 역사 만들기를 응원한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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