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크레파스 그림과 유화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명화를 미술관에서 직접 보고는, 그 엄청난 색감과 무게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학창시절 얄팍한 책으로는 못 보던 세상을 불혹이 넘어서야 알다니 안타깝던 차에, 동네 구경하듯 미술관에 놀러 온 그 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마냥 부러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 중에는 그림 그리기를 완강히 싫어하거나, 그리기도 전에 자기는 잘 못 그린다며 울상부터 짓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아이들은 과거 크레파스나 사인펜을 사용하는 시기에 그림 선을 벗어나거나 잘못 색칠을 하면 누군가로부터 지적받은 기억이 많거나, 본인 스스로 그것을 못 견디는 성향을 보인다. 보통 우리 사회에서는 꼼꼼하게 선 안에 맞춰 잘 칠한 아이들만 칭찬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그림에는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화만 해도 크레파스나 사인펜 그림과 달리 적절히 기다렸다 덧칠을 하는 테크닉에 따라 화가의 마음이 덧입혀지며 완성되어간다. 이처럼 같은 것을 그려도 재료와 기술에 따라 그림의 성격이 달라지듯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유사하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는 학교나 직장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에서도 크레파스나 사인펜으로 각 맞추듯, 실수 없이 단번에 그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선 하나만 어쩌다 삐끗 넘어가면 인생이 끝장난 양 좌절하고, 어른들마저 그것을 부채질하듯 ‘벌써 이러면 앞으로는 어쩌려고!’라며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의 기세를 싹둑 잘라먹는다.

삶이 한 가지 형태로만 만들어져가는 것이 아닐 텐데 때론 덧칠로 번지는 효과를, 또는 덧입혀서 풍부해지는 색감과 질감을 만끽하는 유화 같은 순간은 필요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휴식이나 미식, 여행마저도 실수 없이 완벽하게 그려져야만 하는 것인지. 일상에 단비가 되어야 할 휴식의 시간조차 SNS 속에서만 크레파스로 쓱 긋고 지나가듯 존재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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