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22)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정복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아버지의 골프채를 가지고 놀던 ‘제주의 아들’은 PGA 투어 사상 최초의 아시아 국적 신인왕을 넘어 정상에 올라섰다. 경사스러운 날이지만, 임성재는 조국에서 확산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걱정했다.
임성재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 PGA 내셔널 챔피언스 코스(파70·7125야드)에서 열린 2019-2020 PGA 투어 혼다 클래식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3개를 묶어 4언더파 66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 2위 매켄지 휴즈(캐나다)를 1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임성재는 PGA 투어로 데뷔한 2018-2019시즌에 올해의 신인상을 차지했다. 1990년 제정된 이 상을 거머쥔 아시아 국적 선수는 임성재가 유일하다. 그 사이에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와 PGA 2부 투어도 정복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PGA 투어는 임성재에게 정상을 호락호락하게 내주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9월 샌더스 팜스 챔피언십에서 차지한 준우승은 임성재의 최고 성적이었다. 그렇게 49전 50기. 임성재는 투어 출전 50번째, 정식으로 데뷔한 뒤 48번째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승 상금은 126만 달러(약 15억원)다.
임성재는 최경주(8승), 양용은·배상문(이상 2승), 노승열·김시우·강성훈(이상 1승)에 이어 PGA 투어를 정복한 7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1998년 3월 30일생으로 아직 22년을 채우지 않은 젊은 나이, 그리고 투어 2년 차에 이룬 일이다.
이런 임성재를 길러낸 곳은 제주도다. 아버지 임지택씨는 취미로 골프를 즐겼는데, 아들은 걸음마를 뗄 때쯤 집에 있는 골프채를 장난감 삼아 스윙 폼을 따라 했다고 한다. 이를 특별하게 여긴 임씨는 7세가 된 아들에게 정식으로 골프를 가르쳤다. 그렇게 15년 뒤 아시아 골프 최고 스타가 탄생했다.
임성재는 이날 공동 선두에서 경쟁한 휴즈를 ‘베어 트랩’에서 뿌리쳤다. 베어 트랩은 투어에서 난코스로 악명 높은 PGA 내셔널 챔피언스 코스에서도 유독 어렵기로 이름난 15~17번 홀을 말한다. 임성재는 15번 홀(파3)에서 티샷을 홀컵 2m 앞에 붙인 뒤 버디를 잡았다. 16번 홀(파4)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트렸지만 집념을 발휘해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휴즈가 보기를 범한 이 홀에서 임성재는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휴즈는 17번 홀(파3)에서 묘기에 가까운 16m짜리 버디 퍼트에 성공해 갤러리의 환호성을 끌어냈지만, 임성재는 흔들리지 않고 핀 2m 앞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 간격을 유지했다. 이어 휴즈와 나란히 파를 친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우승을 확정했다.
임성재는 베어 트랩에서 승부를 걸었다고 한다. 시상식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15~17번 홀이 어렵지만, 이날만은 우승하고 싶은 마음에 공격적으로 쳤다. 원하는 샷(페이드샷)이 잘됐다”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밤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한국에서 확산되는 코로나19를 언급하며 “확진자 수가 3000명을 넘겼다고 들었다. 걱정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힘을 내야 하는 순간에 조국을 떠올렸다는 얘기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