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보도자료에서 이 책을 “한국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가사 비평”이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면 유행가가 때로는 문학의 수준에 버금갈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화제의 신간은 작사가이자 음반사 JNH뮤직 대표인 이주엽(56)이 펴낸 ‘이 한 줄의 가사’(열린책들). 최근 JNH뮤직이 있는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만난 이주엽은 “출판사에서는 ‘비평’이라고 소개했지만 비평의 수준까진 아니고 ‘가사 에세이’ 정도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겸연쩍어했다.
“사람들이 노래를 분석할 때 멜로디나 편곡에는 집중하는데, 노랫말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가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공간에 걸려서 노래에 빠져드는 법이니까요.”
책에는 가요 39곡, 팝송 2곡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한 줄의 가사’라는 제목처럼 특정 노래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구절을 하나 소개한 뒤, 각각의 노래를 분석한 내용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저자의 필력. 서문에 등장한 이런 대목이 대표적이다. “가사는 지면이 아니라 허공에서 명멸한다. 써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다. 읽지 말고, 듣고 불러 봐야 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가사인지를.”
이주엽이 이런 작업을 벌이는 데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 노래는 들국화의 ‘행진’이다. 특히 이 노래에 등장하는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라는 대목을 격찬했다. 이주엽은 “행진의 전체 노랫말을 보면 문학적인 완성도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비가 내리면…’ 부분은 한국 대중음악 가운데 가장 멋있는 문장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가사에는 비와 눈이라는 시련에 맞서는 예술가적 결기가 담겨 있다”며 “‘행진’은 이 대목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경지에 이른 곡”이라고 말했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이주엽이 회사를 그만두고 JNH뮤직을 차린 건 서른여덟 살이던 2002년이었다. 재즈 보컬 말로,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음반이 그의 회사에서 나왔다. ‘이 한 줄의 가사’는 이주엽이 발표한 첫 책. 그는 “처음 음반을 제작했을 때처럼 기분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어떤 분야든 대중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니 일단은 책이 좀 팔렸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음악 현장을 다룬 에세이나 여행과 관련된 책을 써보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