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야구가 깊은 위기에 빠져 있다. 재능 있는 고교 선수 대다수가 프로야구(KBO)로 직행해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프로 구단들도 대졸보다 3~4살 어린 고졸 선수를 선호하는 성향이 짙다. 지난해 KBO는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를 각 구단마다 1명 이상 지명해야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야구연맹은 더 큰 풍파를 맞았다. 수년간 선수 등록비를 올려야 했을 만큼 재정난에 시달린 데다 지난해 12월 아직 임기가 1년 남은 김대일 전 연맹 회장이 돌연 사퇴하며 수장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19일 고천봉(54) 제일가스에너지 대표이사가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고 회장을 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마야구 위해 나선 열혈팬
고 회장은 연맹 회장에 입후보하면서 기탁금 3000만 원을 냈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추후 연맹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야구선수 출신이 아닌 고 회장이 물심양면으로 연맹을 위해 힘쓰는 이유는 야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고교야구, 실업야구에 이어 프로야구까지 줄곧 야구를 좋아해왔다”며 “요즘도 포털사이트 스포츠란에 있는 대부분의 야구 기사를 읽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로야구도 아마야구가 잘 돼야 더욱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주변 지인들로부터 대학야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반등의 기회가 없을 거라고 해서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나서게 됐다”고 돌아봤다.
취미였던 야구는 이제 쉽지 않은 업무로 변했다. “취임 축하드린다”는 말에 고 회장은 “어려운 상황이라 축하를 받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소감을 묻자 “지금은 소감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현재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업무도 쌓여있다. 먼저 업무 정리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현안에 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저희 좀 살려주세요”
당면 과제는 지난해 무너진 연맹의 정상화다. 어느새 3월이지만 올해 대회 일정도 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았다. 한 대학 선수 학부모는 지난 1월 12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자유게시판에 “연맹 회장 사임, 운영 중단 등으로 올해 대학 대회가 열릴지도 불확실해 답답하다”며 “저희 좀 살려 달라”는 호소문을 남기기도 했다. 고 회장은 대회 운영에 대한 질문에 “일단은 지난해 짜인 틀을 가지고 올해 일정을 최대한 빨리 준비하는 게 우선”이라고 답했다.
원래 연맹 회장의 임기는 4년이지만 보궐로 선출된 고 회장의 임기는 1년 만에 끝난다. 미래보다는 지금만을 보고 있다. 고 회장은 “취임 전후로 전문가들로부터 이런 저런 제안을 받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길 단계가 아니다. 뛰지도 못하는데 날 수는 없으니 한걸음 한걸음 내딛겠다”며 “내부 정리를 마치면 야구인들을 두루두루 만나 최대한 정상적으로 한 해를 마치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나고 듣고 돕겠다
고 회장은 인터뷰 내내 “나는 야구를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한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 이사인 만큼 ‘조직 관리’는 전문가다. 그런 고 회장은 소통과 협업을 중시한다. 그는 “모든 조직에는 독불장군이 있어선 안 된다. 혼자 끌고 갈 수는 없다”며 “자기가 모든 분야에 정통한 게 아닌 이상은 각 분야 별로 잘 하는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하는 분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나는 그 업무 상황을 체크하겠다”며 “나중에 다른 사람이 회장을 하게 되더라도 한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각자가 유기적인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맹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 회복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 회장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연맹의 주인은 선수”라며 “연맹이 현장에서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들었다. 이어 “공정이 중요하다.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고 상식에 입각해 운영되는 것이 바로 정상화”라고 힘 줘 말했다. 또 “대학야구 홍보에도 더욱 노력해 잘 하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더 알려지고 중요한 경기는 보도돼 팬들의 눈에 띄도록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