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음과 머리의 빨래 널기



연하늘 청파랑 오묘한 자연의 색으로 하늘이 따듯이 빛나고, 잿빛에 불과하던 개나리 꽃망울들이 눈이 부시게 점점이 피어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마음속 어딘가는 서늘한 땅 속 한기가 그대로인 듯 겨울이 끝나간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이든 부모님을, 또는 어린 아이들을, 누군가는 생계의 위협을, 또 다른 누군가는 한 끼 식사의 지원에 걱정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스트레스로 더 포악해진 학대 가족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어떤 아이들은, 살아서 학교에 갈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통째로 말살하려고 했던 유대인 수용소가 배경이다. 주인공은 끔찍한 수용소일지언정 아이에게 하루하루 희망과 웃음을 주려고 고군분투한다. 그의 코믹한 움직임은 여지없이 아이와 더불어 관객에게 웃음을 주지만, 개그의 목적이 지옥 속에서도 아이의 희망을 지키려는 부모의 절박함이므로 관객의 마음은 웃음과 동시에 통증이 인다. 누가 그랬던가. 실제로 삶을 빼앗는 것은 병이 아닌 절망이라고. 그러니 오늘은 억지로라도 희망을 보자. 책 ‘안네의 일기’에서도, 일제 치하의 우리 선조들도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나름의 해학과 웃음거리를 찾았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전쟁통 속에서도 세워진 학교에서 놀이를 만들어 놀고, 청춘남녀들은 군복을 염색해서 옷을 만들어 입었겠는가.

학교와 학원 혹은 일터가 멈춘 이 시간이 훗날 기억되도록 학대와 폭력이 없는, 일상의 소중함, 주변의 고마운 이들의 아낌과 애정에 대한 감사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가족과 이웃을 살피면서 잠시 고통과 고민은 걷어버리고, 머릿속도 볕 좋은 날 빨래 널 듯 쉬어가면 좋겠다. 날이 좋다면 잠시 창문을 열어보자. 한껏 들이쉬는 숨 속에 봄이 한 뼘 더 내 마음에 다가오도록.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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