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봄, 봄, 봄비



세상에. 봄비가 온다.

토닥토닥 빗소리에 번잡한 세상의 소음은 먼지와 함께 한 톤 낮아진다. 차분히 앉아 창밖을 보면 내 마음이 한 뼘 더 가까이 느껴진다.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지만, 지나치게 부대끼며 경쟁하던 현대사회에서는 심리적으로도 필요한 노력 같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인류 역사상 사회가 과열되고 인구가 폭증할 때마다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났다. 우리의 삶도, 마음도 그간 지나치게 과열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식사만 균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람 간의 거리도, 삶의 모습도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 더, 사회적 고립이나 자극적인 뉴스들로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감염성 질환으로 격리된 사람들은 병 자체보다도 절대적으로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의 고통을 호소한다. 직접 만나지 못해도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만에 서로를 떠올리며 손글씨 메모도 좋고 메일이나 문자, SNS도 좋다. 갑자기 온라인으로 학교 강의를 준비하느라 쩔쩔매는 구닥다리 세대인 나와 동료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어찌나 재간이 넘치는지 뚝딱뚝딱 동영상으로 일상과 유머를 공유하고 친구들과도 댓글로 소통한다. 학원 때문에 자주 모이기 어렵던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다함께 어울릴 수 있어 요즘이 더 좋다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고, 정신건강을 해치는 불쾌한 뉴스들은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이 어지러운 시기에 나를 지키는 ‘심리방역’이다.

전염병은 언제나 더 약한 이들을 공격하며 혐오를 퍼뜨리고 극단적인 공포를 심는다. 그럼에도 작은 노력과 마음을 모아 서로를 돕는 사람들 사이에서 봄이 오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거리에서도 쨍한 노랑, 분홍 꽃망울이 화사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요즘이지만, 어두운 겨울 땅을 뚫고 나온 봄꽃처럼 화사한 희망이 남아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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