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셀프빨래방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대체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빨래방에 간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고 나면 계절을 마무리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때마침 세탁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평소보다 자주 빨래방에 가야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지만 손님이 두 명 있었다. 이십대 여성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문제집을 풀었고 중년 남성은 건조기에 옷을 넣은 다음 한쪽에 놓인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았다. 나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그리고 건조기로 옮긴 세탁물이 건조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건조가 끝난 후 건조기에서 세탁물을 빼다가 무심코 왼쪽에 놓인 메모판에 시선이 머물렀다. 메모판에는 빨래방에 방문한 사람들이 붙여놓은 색색의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빨래방 주인에게 남기는 감사의 글이나 불만사항도 있었지만 혼잣말을 하듯이 자신만의 상념과 감상을 적은 글, 취업과 가족 건강을 기원하는 글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글에 답을 적어 붙인 포스트잇도 있었다. 나도 포스트잇에 짧은 글을 적어 메모판에 붙였다. “축 처진 축축한 마음 뽀송뽀송한 빨래처럼 바싹 말리고 갑니다.”
이틀 뒤 먼동이 틀 무렵, 이불과 옷가지 몇 벌을 손에 들고 빨래방으로 이어진 언덕을 올랐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싶었다. 이른 아침에 빨래방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한밤중의 셀프빨래방은 나름의 운치가 있었는데 아침의 빨래방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의 빨래방은 고요했다. 누군가 세탁기를 돌려놓은 뒤 자리를 비운 듯 단 한 대의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건조기에 들어간 빨래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붙인 포스트잇 위에 누군가 다른 색의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것을 발견했다. 내게 보낸 답장이었다. “축 처진 마음은 남 탓이라도 마음을 말리는 건 내 몫이죠. 빨래는 셀프니까요. 뽀송뽀송한 마음 오래 간직하시길요^^”
김의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