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의 전투에 나선 각국 정부가 ‘현금 지급’ 카드를 빼놓지 않고 챙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1조 달러(약 1245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1인당 1000달러(124만원)씩 지급’을 포함시켰다. 호주, 싱가포르 등이 이미 시작한 현금 풀기에 미국도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와 여당도 다음 달 내놓을 긴급경제대책에 국민 1명씩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현금 급부’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현금 지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는 최근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필요한 재원은 50조원가량이다.
미 정부 등이 내놓은 대대적 현금지원책은 경제학에서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로 일컫는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살포한다는 의미다. 헬리콥터 머니는 미국의 통화학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9년 ‘최적화폐수량(The Optimum Quantity of Money)’ 논문에서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침체에 빠진 경제의 생산과 물가상승률을 높이기 위해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 현금을 뿌리는 것이라는 게 기본 아이디어다. 주요 선진국의 정책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2008년 금융위기 때 헬리콥터 머니는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2008년에는 풀린 유동성이 금융회사 붕괴와 신용 경색으로 개인과 회사로 돌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은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고 있다. 매출이나 소득이 사라진 회사와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고 피해를 수습하는 데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돼야 한다는 얘기다. 또 소득이 없어진 사람에게 한 달 임금도 채 안 되는 100만원 현금 지급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 진작 효과도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
배병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