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의 고위 간부가 전염병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24일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예칭 후베이성 통계국 부국장은 “관료주의는 바이러스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오히려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며 지난 1월 23일 우한시에 봉쇄 조치가 내려진 이후 60여일간의 상황을 기록한 ‘우한 일기’를 공개했다.
예 부국장은 일기에서 후베이성 정부가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지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인민정치협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전염병 확산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이 때문에 적절한 대응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후베이성 정치자문위원으로 지난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지역 양회에 참석했던 예 부국장은 당시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온 몇 명의 정치자문위원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등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가 달랐다.
예 부국장은 “홍콩이 지난 1월 4일 전염병 위험을 경고한 이후 홍콩 자문위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회의에 참석했다”며 “나도 호흡기 전문가인 중난산 원사가 사람 간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다고 선언한 뒤부터 전염병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의 초기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우한의 일부 의료부서와 의료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푸젠성 취안저우호텔 붕괴 사건에서 불법 증축 등을 눈감아준 관료주의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처럼 우한의 관료주의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우한의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시민들에게 공황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전형적인 관료주의 행태를 보여줬다.
그는 우한에서 나타난 관료주의는 전국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후베이성 황강시에서 위생건강위원회 주임이 병원의 병상 수와 환자 수용 능력 등 기초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해 경질된 것처럼 전국에 비전문가가 보건의료 분야를 책임지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건의료계 출신 전문가가 보건담당 부지사나 부시장 등에 임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 부국장은 관료주의에 도전한 사례도 열거했다. 코로나19 발생을 경고했다가 공안에 불려가 훈계를 받은 리원량 등 8명의 의사, 과학 정신으로 관료주의에 도전한 중난산 원사와 전염병학자 리란쥐안 등 4명의 학자, 웨이보에 “우한시는 지도자를 바꾸려면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후베이일보 장이중 기자를 관료주의에 도전한 사람들로 꼽았다.
그는 “우한 경찰이 리원량 사건을 재조사해 경찰관 2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처벌했지만 조사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면서 “이후 지역 위생건강위와 병원, 공안국 관계자들도 처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국에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을 촉구한 셈이다.
예 부국장은 이어 “당국이 수백명의 고위 관리를 직무태만으로 처벌하면서 상황은 나아졌다”면서도 “전염병이 완전히 통제된 뒤에 더 많은 공무원이 직무유기와 부실 대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