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기 시작한 것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다. 미국은 이때부터 79년까지 한국에 146억810만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62년까지 무상원조 47억 달러를 제공하고 이후에는 차관 형식으로 지원했다. 잉여농산물을 지원하기도 했다. 일명 PL 480으로 불리는 미국 공법 480호의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에 따라 56년부터 81년까지 주로 밀가루를 제공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은 ‘천조국(千兆國)’으로 불리기도 한다. 군사비만 1000조원 가까운 돈을 지출한다고 해서 인터넷 을 중심으로 퍼진 조어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조선의 ‘천조(天朝)’로 군림했듯이 미국이 한국의 천조라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천조국 미국의 원조를 받던 한국이 이제는 반대로 미국에 ‘원조’를 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밤 문재인 대통령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방역 물품들을 긴급하게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역 물품을 지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국내 여유분이 있으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오전 코로나 진단시약 개발·생산 업체인 씨젠을 방문, 진단시약 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들을 격려했다. 이들 업체의 코로나 진단시약은 정부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상태다.
미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5만명을 넘어섰지만 진단키트는 물론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이 부족한 상황이다. 마스크 등은 우리도 부족하다. 그러나 국내 진단키트 생산량은 충분해 미국에 지원해 줄 여력이 있다. 무상지원이 아닌 수출 형식이지만 의미가 크다.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 진단키트 지원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미국에 대한 지원은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국에 마스크 300만장을 지원하기로 했던 문제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것과는 다르다. 트럼프의 지원 요청은 한국이 방역 강국이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또 하나의 징표이기도 하다.
신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