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39년 조기축구 멈춰놓은 코로나… “우리는 달리고 싶다”

덕계축구회 선수들이 지난해 10월 6일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K5리그 경기권역 4라운드 안산 각골축구회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덕계축구회는 이 대회에서 3승 2무로 우승을 차지, 올해 열리는 25회 FA컵 대회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말 이후 주변 경기장이 모두 문을 닫아 대회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덕계축구회 제공
 
경기도 양주 청소년수련원 축구장 옆 덕계축구회 사무실에 지금까지 획득한 다른 우승컵들과 K5리그 경기권역 우승트로피가 놓여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지난해 9월 8일 양주시장기 대회를 우승한 뒤 찍은 기념 사진. 덕계축구회 제공


덕계축구회 홈구장인 경기도 양주 청소년수련원 축구장은 한 달째 잠잠하다. 수십 년째 공이 구르지 않은 적이 없던 곳이다. 덕계축구회 회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대부터 70대까지 이곳에 삼삼오오 모여 패스를 주고받고 슛을 날려왔다. 지난해에는 흙바닥 대신 새로 인조잔디까지 깔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뒤 모든 게 바뀌었다. 지난 24일 찾은 구장엔 축구화와 공이 맞부딪히는 경쾌한 타격음도, 출렁이는 골망과 함께 터지던 환호성도 더 이상 없었다.

코로나19에 뺏긴 ‘39년 일상의 축구’

덕계축구회는 올해 창단 39년째를 맞은 조기축구회다. ‘새마을조기축구회’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게 1982년, 양주에 지역 축구협회가 생기기도 전이다. 현재 회원만 약 60명에 이르고 창단 이래 몸을 담았던 사람까지 세면 족히 수백 명은 된다. 구성원 중에는 현역 K리그 심판도 있다. 이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주말 오전 구장에 모여 공을 찬 뒤 식사를 하고, 술잔과 일상을 나누며 함께하는 ‘생활’에 가깝다. 18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현(49)씨는 “일요일 아침마다 공을 안 찬다는 게 너무 어색하다”고 말했다.

부회장 전동열씨는 김 회장과 한동네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친구다. 양주 토박이인 두 사람은 군 제대 직후인 스물네 살 무렵 덕계축구회에 동반 입단했다. 이른바 구력(球歷)만 25년이 넘는다. 문자 그대로 ‘눈빛만 스쳐도’ 서로 공을 보낼 곳을 안다. 날랜 발놀림을 자랑하던 젊은 시절엔 각각 팀의 양 날개를 도맡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둘 다 측면 수비수로 위치를 옮겼다.

창단 멤버이자 2대 회장인 골키퍼 신광철(71)씨도 아직 연령대 축구대회에 덕계축구회 소속으로 출전한다. 양주가 시(市) 아닌 군(郡)일 때부터 축구를 했다. 겨우 열댓 명 남짓한 동네 선후배가 덕산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매일 공을 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양주에 공장이 모였던 1980~90년대에는 덕계축구회 주관 지역대회에 각양각색 선수복과 축구화를 갖춰 신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먼지가 쌓인 사진첩을 뒤적이던 신씨는 “모이면 공 차느라 바빠서 정작 사진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난해는 덕계축구회에 뜻깊은 해였다. 2017년 K7리그에 참여한 덕계축구회는 승격을 거듭해 지난해 생활축구 최상위 리그인 K5리그에 진출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생활축구 전국연합회를 통합하면서 탄생시킨 지역 승강제 덕이었다. 지자체 등의 도움으로 지난해 양주 청소년수련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깐 것도 이런 경사가 거듭되면서였다. 그들이 속한 K5리그 경기권역에는 동두천, 의정부 등 지역 생활축구계의 강자들이 즐비했지만 5경기 3승2무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몇몇 승부는 아직도 생생하다. 첫 경기는 전년도 K6리그에서 같은 권역 우승을 내줬던 동두천 ONETEAM(원팀)과 벌여 1대 1로 비겼다. 경기 종료 직전 얻은 페널티킥을 실축해 비록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막판 결승골을 넣어 3대 2로 이겼던 용인축구회와의 경기, 전반 3-0으로 지다 후반 8대 4로 역전승한 김포 삼본축구회와의 경기를 회상하면서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은 신이 났다. 역시나 축구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들뜬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들의 축구 시계는 지난달부터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FA컵, 미뤄진 축제

본래 일정대로라면 덕계축구회는 지난 14일 K3리그 소속 평택시티즌과 FA컵 1라운드를 치렀어야 했다. 대회 참가 자체가 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FA컵에는 올해 기준 프로와 실업, 아마추어 구단 60개 팀이 참여한다. 성인 수준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토너먼트 컵 대회다. 현 체재가 갖춰진 건 25년째지만 전신은 한 세기 전인 1921년 시작한 전조선축구대회다. 우승팀에게는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출전권이 주어진다. 일단 목표는 1승이다.

지난 2월 말 대진표 추첨 뒤 덕계축구회는 본격적으로 체력훈련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주말을 제외하면 퇴근 이후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각오가 남달랐다. 지난해 경기권역 우승팀 자격으로 전국 지역 우승팀들이 모이는 ‘K5리그 챔피언십’에 출전했다가 체력 차이를 실감했었기 때문이다. 본래 전·후반 25분 단위로 진행되는 조기축구회 경기 특성상 정규 45분을 프로선수들처럼 뛰어다니기는 쉽지 않다. 김성현 회장은 “체력훈련이 급한데 인근 구장이 코로나19로 모두 폐쇄돼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 환갑인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덕계축구회 회원인 김은수(33) 코치에게 FA컵은 특별하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결국 프로가 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FA컵은 동경했던 프로선수들과도 직접 맞붙을 기회다. 예닐곱 살부터 아버지에게 축구공 다루는 법을 배운 그에게 이곳 선수복을 입고 FA컵에서 뛴다는 것은 꿈만 같다.

선수로도 핵심전력인 김 코치는 중앙 미드필더를 맡고 있다.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패스 줄기를 뚫어주는 역할이다. 김 코치는 “K3리그에서 뛰는 후배들 의견을 들어봐도 우리 팀 정도면 전력상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경기에 어떻게 임할지 작전 시나리오도 여럿 마련해놨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다시 공만 찰 수 있다면 언제든 훈련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축구대회인 월드컵은 축제로 불린다. 월드컵처럼 수만의 관중이 지켜보는 축구장에서가 아니더라도, 덕계축구회 사람들에게 매주 해왔던 축구는 일상을 위로해 온 작은 축제다. 멈췄다가도 이내 구르는 축구공처럼, 결국 덕계축구회의 축구도 여태 그랬듯 계속될 것이다. 덕계축구회의 축제는 다시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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