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 어디에나 긴장과 불편함의 수위가 높아서인지, 학생 때 시험공부 기간에 아무 생각 없이 달달 외웠던 성숙한 방어기제(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 몇 가지가 문득 떠올랐다. 이타주의(altruism), 유머(humor), 승화(sublimation).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남 탓을 하며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 투사한다. 또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술이나 파티를 하는 등 미숙하게 퇴행하거나, 반대로 힘든 감정을 분리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묻어두고 일상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두 번은 이런 꼬인 방법이 상황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반복되는 왜곡된 행동들은 자신이나 주변을 힘들게 하고 결국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 반대로 이타주의 사람들은 어려운 중에도 마스크나 생필품을 기부하거나 양보하고,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의료인처럼 자신보다 이웃을 앞에 둔다. 건강한 유머는 자신과 주변의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끌어준다. 또 고통에 갇히지 않고 이를 글이나 그림 등 자신만의 예술로 표현할 때, 함축된 예술은 순간이나마 일상의 비참함을 벗어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최근 고립된 이들을 위한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온라인 응원 영상들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은 절망과 고통에 휩싸인 폐허에서 희망을 싹틔우고, 자신의 내면뿐 아니라 지친 이웃들을 보듬는다.
오늘 진료실에 온 아이는 그간의 스트레스를 코믹한 만화로 그려 방심하고 있던 나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내 반응에 신난 아이는 마무리 한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걔를 미워하거나 때려주는 것보단 만화로 표현하는 게 기분이 더 나아지더라고요.” 역시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 절로 박수가 나오는 통찰력이다.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을까? 내 안의 고약한 감정을 남에게 던지거나 더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을지 한번 되돌아보자.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