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
지난 2월 24일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조사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브루스 에일워드 박사가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당시엔 WHO가 왜 이런 뜬금없는 얘기를 하는지 의아했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때문에 하는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했다. 그의 찬사는 이후 치밀하게 진행된 ‘전염병 스토리’ 각색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12일 유엔 사무총장과 통화에서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에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악재를 호재로 바꾸는 절묘한 화법이다. 그때부터 중국은 전염병 확산의 진원지라는 책임론을 거부했다. 대신 전염병을 몸소 겪고 세계에 경험을 전수하는 공헌자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발원설’도 치밀한 시나리오가 느껴진다. 중국의 ‘사스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 원사는 2월 27일 “코로나19가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4일 뒤 코로나19의 근원과 전파경로를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그즈음 중국 인터넷에서는 우한 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미군이 바이러스를 퍼트렸을 수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지난달 12일 밤 트위터를 통해 “미군이 우한에 바이러스를 옮겼을 수 있다”고 공식화했다. 박쥐 등 야생동물을 먹는 중국인의 구습 탓에 전염병이 초래됐다며 대대적인 야생동물 식용 금지 캠페인을 하더니 갑자기 미국 책임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게다가 중국 매체는 이탈리아의 한 학자를 인용해 “코로나19가 이탈리아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그 학자는 “코로나19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중국 것”이라며 보도가 조작됐다고 비난했다. 이탈리아의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는 중국인 관광객 부부다. 그들이 퇴원하며 “목숨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는 기사가 중국 매체에도 실렸는데 ‘이탈리아 발원설’을 꺼내 든 것이다.
중국이 각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계속 중국 공헌론이나 미국 발원설을 퍼뜨리는 것은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중국에 쏟아질 비난을 차단하고 ‘시진핑 책임론’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 각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중국의 의도대로 판이 굴러가는 모양새다. 시 주석은 세계 각국 정상들과 연일 통화를 갖고 “전 세계 공중위생 안전을 지키겠다”며 방역 성과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중국 매체는 방역을 제대로 하라고 훈수도 뒀다.
중국은 허리 좀 펴게 되자 사전 통보도 없이 유효한 비자와 거류허가를 가진 외국인의 입국도 금지시켰다. 모든 외국 항공사의 중국 노선도 한곳으로 줄였다. “인류 운명공동체를 만들자”던 시 주석의 말이 무색해졌다. 중국은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 초기엔 각국의 입국금지 조치를 거칠게 비난했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전염병 퇴치에 정신이 없어 참고 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 않을까. “중국이 세계에 공헌했다”는 식의 주장은 수많은 국민이 죽어가는 나라들 입장에선 듣기 거북한 말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초기 늑장 대응으로 흠집이 난 시 주석의 권위 회복에 온 힘을 쏟는 분위기다. 조만간 양회(兩會)가 있고, 2년 뒤 시 주석의 3연임도 걸려 있어 다급한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전염병 피해국들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말아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중국의 자화자찬보다는 사과나 유감 표명이 먼저라고 느낀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