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기간에 느는 것은 요리’라고 한 페친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썼다. 참깨까지 뿌려서 올린 해물잡채 사진은 먹음직스러웠다. “최고의 챌린지” “다음 요리는 뭐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렇다. 그것은 챌린지(도전)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시대의 삶을 살면서 전에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 독일의 쾰른과 한국의 서울 두 곳에 갤러리를 운영하며 수시로 지구촌을 오가는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집콕’을 하고서야 요리의 세계에 눈을 떴다.
코로나19 사태로 당연시하던 일상이 올스톱됐다. 학교를 가고, 전시와 공연을 보고, 동창회를 가고, 해외여행을 하는 것들 말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된 탓에 전쟁 때 외에는 취소된 적 없던 올림픽도 연기된 마당이니 변화는 불가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최선의 방책인 지금 우리는 동굴 속에 살던 구석기인처럼 집에 피신해 있다. 안전한 집 안에서의 시간은 과거보다 느리게 흐른다. 재택근무를 하니 출퇴근 시간을 벌었고, 대부분의 모임도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집밥이 대세인 상황이 됐다. 이렇듯 코로나19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일상을 만난다. 잃은 것 대신에 얻는 것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기본소득 실험 등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지 않나.
또 하나. ‘오래된 것의 귀환’을 꼽고 싶다. 누군가는 부부가 재택근무를 하니 가정경제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던 농경시대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고 했다. 속도의 시대에는 가사든, 육아든, 요리든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질주하던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린 지금 집밥처럼 과거의 방식이 소환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생태주의와 로컬주의에 대한 관심의 환기도 그중 하나다.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키는 코로나19는 초세계화를 이용해 자연이 인간에게 가한 역습이다. 자본과 인간이 국경을 넘는 빠른 속도와 범위만큼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발생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린시는 최근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특징으로 빅브러더 식 권력의 공고화와 민족주의의 발흥 두 가지를 꼽은 바 있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인류가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며 전체주의적 감시체계와 민족주의의 고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민족주의란 양면적이다. 국경을 넘기보다 국경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것이 지구 환경에는 훨씬 이롭기 때문이다. 한곳에서 생산한 상품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화석 연료가 소모되고, 지구촌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 그걸 알면서도 다국적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세계화는 가속화됐다.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인류가 나아갈 길로 지역화, 반세계화를 주창했다. 세계화의 대안으로서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로컬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민족주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생태신학자 존 캅 주니어는 논저 ‘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에서 민족주의에 주목하는 통찰을 보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식의 국경폐쇄를 다른 각도에서 봤다. 생존을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민들을 내쫓는 것이 반인권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부자 나라로의 이민이 아니라 그들이 자국에서의 삶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나가도록 돕는 쪽으로 글로벌 정책은 바뀌어야 하며 트럼프는 그런 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부르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지구 환경을 위해 도전이자 기회이다.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