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카운트다운 시계는 이제 1년을 거슬러 돌아갔다. 2020 도쿄올림픽은 당초 예정된 날보다 정확히 364일 뒤로 미뤄진 내년 7월 23일 개막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올림픽 연기는 세계 체육계의 환영을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의 정치적·경제적 문제를 고려한 것이지만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 4년의 훈련을 1년 더 연장하게 되는 힘겨운 도전과 마주하게 됐다.
한국 국가대표들은 올림픽 연기 확정 이튿날인 지난달 26일부터 이틀에 걸쳐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해산했다. 일부는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겨우내 이어졌던 대표팀 소집 훈련을 끝냈다. 그렇게 소속팀·자택·개인 훈련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선수들은 이제 새로운 훈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가대표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홀로 개인 훈련을 하던 올림픽 근대5종 대표팀 주장 정진화(31)를 만났다.
정진화는 대표팀 해산 이후 소속팀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선수단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마다 1시간 넘게 올림픽공원 산책로를 뛰며 몸을 풀고, 오후엔 근력운동으로 훈련을 보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미 2012년 영국 런던 대회,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근대5종 국가대표로 출전한 ‘올림피언’이다. 어쩌면 모든 선수에게 꿈과 같은 올림픽 무대를 이미 두 차례나 경험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고 있는 한국 근대5종의 간판이자 베테랑이다. 이런 정진화에게도 올림픽 연기는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다.
정진화는 “국가대표에게는 물론이고, 현역을 떠난 선배들에게도 올림픽 연기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정말 당황했다.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을 쏟아내기도 전에 1년을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 박자를 쉬고 다시 뛴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 연기는 단순히 훈련 기간만 연장한 것이 아니다. 국가대표에게 지난 4년의 훈련은 올여름에 최고의 몸 상태에 이르도록 설계됐다. 지난해부터 훈련의 강도를 높여 예열한 몸을 앞으로 수개월간 다시 식히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다. 육상·수영처럼 몸 상태의 완급 조절이 중요한 종목은 앞으로 1년의 훈련 계획표가 내년 여름 올림픽의 메달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수영·육상(크로스컨트리)·펜싱·승마·사격의 5종목을 모두 소화하는 근대5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정진화를 포함한 국가대표 14명의 훈련을 총괄하는 최은종(52) 근대5종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 연기가 확정된 뒤부터 훈련의 완급을 조절할 새로운 일정표 작성에 몰두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운동시설 대부분이 폐쇄된 탓에 정상적인 훈련을 펼칠 공간을 찾는 일도 어려운 과제로 주어졌다.
정진화는 “펜싱, 사격, 승마, 수영처럼 시설과 장비가 필요한 종목은 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진행이 가능한 육상만 개인이나 소속팀 단위로 훈련하고 있다”며 “대표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대부분의 국가대표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근대5종은 세계 랭킹을 기준으로 국가별로 할당된 본선 진출권을 나누는 방식으로 올림픽 출전자를 결정한다. 월드컵 시리즈를 포함한 모든 일정이 중단돼 세계 랭킹은 대부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정진화는 남자부 세계 랭킹 19위로, 이지훈(2위)·전웅태(5위·이상 25세)에 이어 국내 3위에 있다. 대표팀 후배들이지만 결국 올림픽 출전을 다퉈야 할 경쟁자들이다.
한국 근대5종에 주어진 본선 진출권은 남·여에 각각 2장씩. 정진화는 내년 여름 전에 순위를 끌어올려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꺾이지 않는 확산세다. 대회가 연달아 취소되면서 랭킹을 끌어올릴 기회가 줄었다. 당장 예정된 근대5종 경기는 오는 6월에서 9월로 연기된 세계선수권대회가 유일하다. 그나마 개최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정진화는 마음을 졸이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지 모를 올림픽에서 못다 이룬 메달의 꿈을 향해 그저 하루하루 묵묵하게 구슬땀을 흘릴 뿐이다.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래서 포기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진화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국 근대5종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줄 때가 됐지요. 어쩌면 제게 마지막 올림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제게 출전 기회가 오면 반드시 메달을 거머쥘 것입니다. 일생일대의 꿈이었으니까요. 그 전에 코로나19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이겨낼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정진화의 머리를 적신 땀이 식었다. 그는 마른 머리에 땀으로 흠뻑 젖은 모자를 다시 눌러 쓰고 올림픽공원 산책로를 향해 달려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