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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1000원짜리 n번방 반성문



반성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문서. 글을 쓰면서 잘못을 자성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반성문의 취지가 요즘 n번방 가해자들로 퇴색됐다.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공유한 n번방 공범들이 수사·사법기관에 대거 반성문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재판부에 반성문과 호소문을 내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박사방에서 시작해 ‘태평양원정대’라는 성착취물 공유방을 별도로 만든 ‘태평양’, n번방 운영자 ‘와치맨’. 공판을 앞둔 이들은 요즘 반성문을 엄청 열심히 쓰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형량 낮추기 전략에 돌입한 것이다. 재판부에 반성문을 내는 것은 성범죄자 사이에서 형을 낮추기 위한 매뉴얼처럼 공유되고 있다. 실제로 그간 성범죄 관련 판결에서 피고인의 반성과 뉘우침을 이유로 감형이 이뤄졌던 선례가 적지 않다. 조주빈과 여아 살해를 모의한 공범으로 재판을 받는 공익요원도 과거 출소 후 반성문을 잘 써서 형량을 줄였다고 주변에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반성문이 인터넷을 통해 돈으로 거래된다는 점이다. 직접 쓰지도 않고 인터넷에 올라온 반성문 샘플을 구입해 그대로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법률 서식 사이트에 가면 실제 경찰·법원 등에 제출됐던 형사사건 반성문이 1000원에서 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하루하루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뉘우치고 있다는 반성문이 알고 보니 온라인에서 몇천원이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n번방 가해자들의 반성문에는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 혹여 반성문 제출로 형량을 경감 받은 후 나중에 우쭐대며 자랑하지는 않을까. 정치권도 이런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n번방 가해자들은 “범죄의 질이 극히 나쁘고 범죄 수법 역시 반인륜적”이라며 “인면수심 행태에 대해 그 어떤 자비와 선처도 허락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반성문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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