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밑줄 긋기



고등학교 때, 정규수업 후에 한 시간 동안 방송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 강의는커녕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방송실에서 각 교실에 학습 테이프를 틀어주는 방식이었다. 당시에 듣던 수업은 국어 과목이었는데 유명 참고서를 만들었던 분이 녹음한 강의였다. 강의를 할 때 자신만의 유행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아직까지 기억나는 말은 “밑줄 쫙! 진달래 꽁이야”라는 말이다. 진달래는 별표를 뜻한다. 중요한 곳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별표를 하라는 뜻이었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독서 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책에 밑줄을 긋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의외로 밑줄을 긋는 분과 긋지 않는 분의 비율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밑줄을 긋지 않는 분들은 주로 책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걸 선호했다. 반면 책에 밑줄을 긋지 않으면 읽어도 읽지 않은 느낌이 들어 밑줄 긋는 건 물론이거니와 메모를 하는 분도 계셨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독서가를 책에 밑줄을 긋는 사람과 긋지 않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는 읽는 책에 흔적을 남기기를 싫어했다. 나도 책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편이다.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 않는 대신 읽으면서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을 발견하면 바로 옮겨 적는다. 책에 밑줄을 긋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가를 보는 일은 좋아한다. 왜 이 부분에 줄을 그었을까 궁금해하며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내가 옮겨 적은 부분에 줄을 그은 걸 발견하면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라는 책에 보면 ‘좋은 책을 선별해 밑줄을 긋는 일이야말로 컴퓨터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비록 책에 밑줄을 긋지는 않지만 이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밑줄 긋기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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