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웬 도넛이?… 도자기이지만 달달한 맛이 떠오른다



갤러리 한쪽 벽면에 도넛 1358개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로 구운 도넛이지만, 달달한 맛이 떠올라 전시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반짝이 크리스털 장식이 붙어 있는 도넛이라니.

‘도넛 조각’으로 명성을 얻은 김재용(47) 작가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 ‘도넛 피어’(사진)를 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입 베어 물면 좋은 크기의 작품도 있지만, 수영장 튜브처럼 뻥튀기 한 작품도 있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풍선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미국 팝아트 작가 제프 쿤스의 ‘풍선 개’가 떠오른다.

김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을 따라 세 살부터 여덟 살까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살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미대를 가기 위해 1998년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색약이라 국내 미대 입학이 어려웠던 탓에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아트스쿨에 들어가 도자와 조각을 전공했다.

졸업 후 반려견, 달팽이 등 동물 소재로 유머 있는 조각 작품을 만들던 그에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변곡점이 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도넛 가게나 차릴까 고민하던 중 ‘작품으로 도넛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후 개인전 제의가 쏟아지며 그는 도넛 조각으로 미국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2015년 귀국 후 도넛 조각은 더욱 변주되며 대형 도넛 연작과 청화 도넛 등이 탄생했다. 중동의 양탄자 무늬를 넣은 도넛도 있다. 도넛은 말하자면 노마드적 삶을 살아온 작가의 분신이다. 전시명 도넛 피어는 두낫피어(Do Not Fear,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로도 읽힌다. 작가는 “코로나 사태로 우울한 국민이 제 작품을 보고 즐거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월 2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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