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위기에도 봄을 즐긴다며 안전수칙을 어기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사회적 거리 지키기와 조심스러운 쳇바퀴 생활에 계절을 느낄 짬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를 바 없이 이 봄을 그냥 지나치던 차에, 어느 위중한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급히 소집된 날이 있었다. 다행히 모두가 기민하게 움직여준 덕분에 걱정했던 상황은 잘 정리가 됐고, 마지막 마무리 작업만 남긴 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식사를 못해 챙겨온 건데, 집에서 대충 만든 떡이라 모양은 좀 엉망이지만….” 양이 많으니 같이 먹자며 나누어 주는 손에 그제야 배고픔을 느끼던 나도 한 접시 냉큼 받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우려했던 것보다 일이 잘 해결돼서인지, 아니면 종일 빈속이어서였을진 모르겠지만 부스러지는 떡 한 조각을 떼어 조심스레 물자마자 느껴진 건 거의 폭발에 가까운 입안 가득한 봄이었다. 모양은 기성품보다 세련되지 않아도 제철 자연에서 소박하게 나온 쑥 버무리는 냉랭한 회의실을 순간 봄꽃 가득한 들판으로 바꾸었다. 봄의 신선한 쑥 향이 이렇게 향긋한지 미처 몰랐던 것을 보면,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런 충격은 나 말고도 다들 마찬가지였는지 딱딱한 회의시간 내내 잔뜩 찌푸리고 있던 사람 모두가 살짝 들떠보였다. 평소 과묵하고 냉엄한 표정이라 항상 대하기 조심스러웠던 한 분은, 전에 없이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옛날엔 이렇게 구할 수 있는 제철의 것들로 간식이나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에 열을 올렸다. 떡에 웬 풀떼기냐며 씁쓰름하게 맛보던 다른 분도 어느새 믹스커피와 딱 맞는 간식이라며 연신 맛을 음미하며 웃었다. 자연이 주는 힘, 영혼을 위한 음식의 힘은 어찌나 놀라운 것인지. 이 자연의 힘으로 낙오하는 이 없이 우리 모두 함께 이 시기를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