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나온 일본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는 당시로선 설정이 황당무계해 보였다. 도쿄 전역에 전기가 끊기고, 전기로 돌아가는 각종 시스템과 지하철, 전자기기 등이 멈춰버린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500㎖ 작은 생수 한 병이 2500엔(약 2만8000원)까지 치솟는 등 생필품 대란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결국 불안한 도쿄를 탈출해 고향을 찾아가게 된다.
영화 속 이런 모습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요즘 일본 SNS에서는 ‘#도쿄탈출(東京脫出)’이라는 해시태그(검색주제어)가 퍼지고 있다. 감염 위험이 높은 도쿄를 빠져나가 지방으로 가자는 취지에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도쿄로 왔을 때도 탈출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시보다 더 불안해하는 듯하다. 탈출 움직임이 확산되자 도쿄 거주자들로 인한 지방의 집단 감염이 우려된다면서 이동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오고 했다.
탈출까지 거론되는 건 도쿄의 감염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한 달 후 도쿄에서만 8만명의 감염자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백화점과 커피전문점, 디즈니랜드 등은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즉시 귀국하거나 잔류 시 14일분의 식량과 의약품을 비축해두라고 권고했다.
현지 언론은 도쿄올림픽과 아베노믹스 때문에 머뭇거리다 감염병 대응에 타이밍을 놓친 아베 총리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8일자 칼럼에서 “총리가 왜 계속 뒷북만 치느냐”고 따졌다. 도쿄 도심에선 아베 퇴진 시위까지 열렸다. 무소속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나 아베의 당내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베보다 역할이 더 돋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했다. 이 정도면 일본 국민들이 도쿄를 탈출할 게 아니라, 아베의 통치에서 탈출할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