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동토 지대인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의 존재는 독특함을 넘어 ‘연구 대상’이다. 그는 자칭 ‘민주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다. 앞에 ‘민주적’이란 수식어를 붙이긴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는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거나 시장을 계획경제로 대체하려는 뜻을 비친 적이 없다. 사회민주주의자(social democrat) 범주에 들어맞는다. 다른 논평자들도 그의 철학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이나 북유럽 국가의 경제·사회적 모델인 노르딕 모델과 연관이 깊다고 한다.
4년 전에 이어 올해 대선에 도전한 샌더스 의원은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꿔놨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좌절한 젊은이들과 노동자 계층이 그의 ‘화끈한’ 공약에 열광했다. 그 공약들은 전 국민 건강보험(Medicare For All), 공립대학 등록금 면제,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Green New Deal), 부유세 도입 등이다. 열성 지지자를 끌어들인 비타협 주의와 과격성은 온건파와 보수파의 우려와 반발을 불렀다. 지난달 3일(현지시간) 슈퍼화요일에 10개 주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내주며 초반 상승세가 완전히 꺾였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까지 겹치자 샌더스 의원은 8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선거 운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는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적자를 한꺼번에 4배나 늘리고 공화당 의원까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만지작거리는 마당에 (큰 정부 주창자인) 샌더스가 대통령의 꿈을 접는 건 아이러니라고 썼다. 하지만 그가 전투뿐 아니라 전쟁에서도 패배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전 국민 건강보험 공약만 해도 미국인들은 공적 보험의 비중을 늘린다는 추상적 의제에는 찬성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샌더스가 내놓은 방안에 대해서 유보적이었다는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