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194개국이 가입해 있는 유엔 전문기구로 1948년 설립됐다. 1980년대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하는 개가를 올렸고 홍역 소아마비 등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 같은 신종 전염병 대응에서 세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WHO 헌장은 인종, 종교, 정치 신념, 경제적·사회적 조건의 차별 없이 최고 수준의 보건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임을 천명하고 있다.
WHO는 한국인이 선출직 수장이 된 최초의 유엔 기구다. 고 이종욱 박사가 80여명의 후보와 경쟁해 2003년 제6대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그는 81년 사모아의 작은 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한 뒤 WHO 남태평양 지역 한센병퇴치자문관, 질병예방관리국장으로 재직하며 ‘아시아의 슈바이처’란 별명을 얻었다. 94년부터 WHO 본부에서 예방백신국장 등을 맡아 소아마비 유병률을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렸다.
이 전 총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사무총장에게 주어지는 예우를 거절하고 소형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몰았다. 연간 150일, 30만㎞씩 출장을 다니면서 수행원 2명만 대동하고 항공기 이등석을 이용했다. 그는 “우리가 쓰는 돈은 가난한 나라 분담금도 섞여 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2006년 과로로 숨지자 유엔 유럽본부는 유엔기를 조기로 게양했다.
그의 후임들은 자주 구설에 올랐다. 홍콩 출신인 7대 마거릿 챈 사무총장, 에티오피아 출신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현 총장 체제는 친 중국 시비에 휘말렸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HO의 코로나19 대응이 중국 중심적이라고 비난하며 분담금 지급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곳곳에서 비난이 나오고 있다. 미 의회에서는 세출위 민주당 간사인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은 “적이 다가오고 있는데 우군의 탄약을 뺏어버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5월 22일은 이 박사의 14주기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그의 헌신이 더욱 그립다.
김의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