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박물관만큼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되는 곳이 어디 있나!”
로비에 못 이긴 서울시가 집합금지 명령을 적용했던 룸살롱 등 유흥시설에 대해 며칠 전 집합제한 명령으로 완화하자 페이스북에선 난리가 났다. 같은 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수도권 국공립 문화예술시설에 대해 2주간 시행했던 휴관 결정을 다시 무기 연장키로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최선의 방역은 ‘접촉 금지’라는 건 상식이다. 그래도 룸살롱은 되고 미술관·박물관은 안 된다니, 이건 무슨 고무줄 잣대인가. 그런 의구심과 황당함이 깔린 반응들이었다.
K방역 성공 신화에 취해 우린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렸다. 4월 하순에 일시적으로 있었던 신규 확진자 수 연속 한 자릿수가 주는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5월 초의 황금연휴 끝에 발생한 서울 이태원 클럽발 n차 감염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거에 ‘생활 속 거리두기’로 돌아선 정부 대책을 비웃듯 말이다. 이제는 대구가 아니라 서울이 문제가 됐다.
중대본이 수도권 지역에 한해 2주간 적용한 ‘강화된’ 생활 속 거리두기를 무기 연장하며 수도권 공공시설을 계속 문 닫기로 한 것은 그런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 서울 양천구 탁구장과 관악구 다단계 업체 리치웨이 등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사태가 터지며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수도권에 있는 국공립 박물관·미술관·공연기관의 전시와 공연 관람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잠시 전시가 열리는 동안 사람들은 눈앞에서 작품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온라인으로 관람을 대신하는 동안 ‘방구석 미술관’ ‘랜선 공연’ 등 신조어가 생겨났지만,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보완재일지언정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건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잠시 개관하는 동안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자 수를 통제했다. 현장에선 발열 체크와 손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었다. 전시장 안에서도 관리요원들이 커플끼리라도 2m 거리를 유지하게 했다. 가장 안전한 곳이 미술관이었다. 블록버스터 전시가 아니라면 평소에도 2m 거리 유지가 되는 곳 아닌가.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터지면 왜 미술관과 박물관 등 문화시설만 문 닫을까. 그것도 공공부문만 문을 닫게 하는 것일까. 외국에서는 가장 마지막까지 문을 열지 않는 동네 헬스장은 멀쩡히 열어두게 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니 K방역 성공 신화의 실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진중권이 말한 것처럼 K방역이 국뽕 신화라는 주장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안에 빈틈과 착시, 혹은 ‘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K방역의 원칙은 서구와 달랐다. 미국과 유럽이 자동차 공장까지 문 닫는 등 생산과 유통 부문 가리지 않고 일시 중단(셧다운)했다. 한국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 부문만 문을 닫았지 생산과 유통, 사회적 서비스는 그대로 뒀다.
그런데도 K방역의 성공 신화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신천지에 의한 착시라는 주장도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신천지 교인들이 매우 폐쇄적이어서 지역감염이 대구와 대구 주변 지역에 그쳤고 더 퍼져나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신도 명단을 통해 추적과 진단이 쉬웠던 점 등을 지적했다. 사재기가 없었던 점도 해외에서 호평했지만, 쿠팡 덕분이었음을 대부분 알고 있다. 언택트를 가능케 한 로켓배송 이면에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다닥다닥 붙어 식사하고 잡담하는 그림자 노동이 있었다.
방역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 자본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쿠팡발 확진자가 터지며 K방역의 민낯을 드러냈지만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은 쿠팡의 업주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물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애먼 미술관·박물관만 문 닫게 하고 있다. 쇼가 아니라 원칙이 있는 대책을 보고 싶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