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동기 중에 목소리가 아주 예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맑고 예쁜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으면 항상 주목과 칭찬을 받았다. 목소리가 더 예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던 나는 그 친구가 발표문을 읽으면 질투가 났다. 발표문을 읽을 때 억지로 기침을 한 적도 있었다. 유치한 행동을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형편없어 보였지만 질투의 감정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질투심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을 보며 한없이 괴로워졌고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질투의 대상은 계속 바뀌었다. 가족에 대한 질투부터 시작해 친구에 대한 질투,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수월하게 이룬 사람에 대한 질투로 계속 이어졌다. 물론 질투심 때문에 이룬 일도 있었다. 자극이 돼 나태해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심리학자 일자 샌드는 ‘서툰 감정’에서 질투란 갈망과 욕구, 사용되지 않은 재능이 혼합돼 있는 감정이며 이를 수치스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질투를 느끼지 않고 싶으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약 원하는 것을 얻는 게 불가능할 경우에는 이를 단호히 포기하고 성취할 수 있는 다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원하지만 얻을 수 없는 일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마음을 다독이면서 포기해도 어느 순간 자극의 스위치를 밟게 되면 다시 표면으로 나오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질투의 감정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내가 잘되는 일만큼이나 주변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잘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시샘과 질투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갖춘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빛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질투라는 감정의 방향을 잘 들여다보고,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서 노력하는 일. 질투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문화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