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지난 11일 강원도 춘천 이레식품 정문으로 들어서자 왼쪽 주택에서 김영창(65) 새중앙교회 장로가 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 6611㎡(2000평) 부지에는 돼지고기 가공업체인 이레식품과 김 장로의 집이 함께 있다. 여기서 나와 500m정도를 가자 2만3140㎡(7000평) 넓이의 이레농장이 나왔다. 350마리의 육우를 키우는 곳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고기 가격이 오르면서 육우값도 덩달아 높아졌다. 바로 옆에는 2~3m 높이의 조경용 소나무가 가지런히 자라는 1만909㎡(3300평) 넓이의 소나무밭도 있다.
사업장을 하나씩 소개하는 김 장로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구릿빛 얼굴에선 건강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를 시작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쓴웃음을 짓다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지금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았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기도로 붙들었죠. 덕분에 신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신앙이었습니다.”
전남 장성 출신인 김 장로는 가난했지만, 딸린 식구가 많았다. 1979년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 현장으로 떠났다. 그는 “리야드에 도착했는데 타는 듯한 더위가 겁이 나 도망치고 싶었다”며 “하지만 50도를 넘나드는 열사의 땅 말고는 일할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다. 하지만 다녀올 때마다 식구가 늘어있었다.
“좁은 집이 식구들로 가득 찼습니다. 기댈 곳 없던 친척들이 저를 찾은 겁니다. 아내에게 얼마나 저금했냐고 물었더니 하늘만 쳐다보더군요. 식솔 챙기느라 저축할 새가 없었던 겁니다. 남들은 중동 몇 번 다녀오면 집도 산다는데, 고생만 했다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들더군요.”
김 장로 가족은 당시 서울 구로구의 한 교회에 다녔다. 고단한 일상 중 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즐거웠고요. 그런데 우리처럼 중간에 다니기 시작한 교인들이 낄 자리가 없더군요. 대를 이어 교회에 다니던 교인들이 밀어내더라고요.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화공약품 가게를 연 뒤, 사업을 키우기 위해 한 안수집사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그 집사가 대표직을 주면 함께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고민했지만, 교인이고 어차피 함께 일하기로 했는데 별일 있겠나 싶어 수락했죠. 동업만 하면 성공이 손에 잡힐 것 같았어요. 하지만 금세 끝났습니다. 그 집사가 다 가져갔습니다. 눈물로 일군 재산을 강탈한 거죠. 재산이 많았는데도 더 갖겠다고 그런 일을 벌인 겁니다.”
이 일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옆에 있던 부인 석영실 권사가 거들었다. “그때는 남편이 외출하면 덜컥 겁이 났어요. 안 들어올까 봐요.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살아야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아이들도 어렸고….”
모든 걸 잃고 95년 도망치듯 춘천으로 왔다. 우연한 기회에 부도 직전의 육가공 공장을 넘겨받았다. 잠시 안정적인 삶을 꿈꿨다. “제가 참 어리석었어요. 전 대표의 채무까지 고스란히 넘겨받은 걸 몰랐죠. 그걸 다 갚았어요. 억울한 것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게 지금 이레식품과 농장의 마중물이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은 제자리를 잡았다. 2000년 자신이 개척한 새중앙교회도 목사가 몇 번씩 바뀌는 어려움을 겪다 이제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북한을 열 차례 다녀왔다. 어렵게 사는 동포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가난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감정이입이 됐다.
“북한과 관계가 다시 악화됐죠. 결국, 하나님만이 이 갈등을 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북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배고프지 않게 해줘야죠. 개성공단 폐쇄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당장 통일은 어려워도 경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한반도는 크게 발전할 거라 확신합니다. 요즘 남북한을 위해 기도할 게 더 많아졌네요. 방문할 수 없으니 묵묵히 기도할 뿐입니다.”
김 장로가 애창하는 찬송가는 ‘이 몸의 소망 무언가’(488장)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는 가사에 김 장로가 겪은 희로애락이 다 담긴 듯했다.
“예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여생을 하나님 일만 하며 살고 싶습니다. 오랜 꿈인 교회 건축도 꼭 하고 싶어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춘천=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